버려라. 취하기 전에. 변화하고 싶으면.

by 김영웅

버려라. 취하기 전에. 변화하고 싶으면.


무엇인가를 지속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여유’다. 여유는 진부하지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정신적 여유와 육체적 여유. 정신적 여유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가지 않는 곳에 몸을 담을 수 없다는 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체적 여유는? 이것이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인데, 맞다, 육체적 여유는 당신이 생각하는 체력과 동의어다.


체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어떤 일을 지속하기 위해 체력이 필요하다는 건 아무나 공감하지 못한다. 이상한 일이다. 그게 그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력과 어떤 일의 지속을 연결시키는 것에 서툰 것 같다. 그들이 생각하는 체력의 필요성은 그러므로 막연한 이상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 일상에서도 체력을 쉽게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체력이 필요하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늘 체력이 모자라는 일상, 그렇다고 해서 체력을 증진시키는 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기로 선택한 삶이 바로 당신의 현재 주소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상이 아닌 현실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렇다. 필요성을 이상이 아닌 현실로 내리게 되면 무엇인가를 지속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너무 뻔한 말인가? 그러나 나는 당신의 머리에 말하는 게 아니다. 몸이 알아듣게 하고 싶다. 그리고 몸이 알아듣게 하는 건 결국 돈과 시간의 투자로 이어져야만 한다. 또한 이 말은, 시간이 하루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포기하거나 줄여야 한다는 말과 같다. 즉 선택의 문제라는 말이다. 우유부단한 당신이여. 마흔이 넘어 골다공증과 마른 비만, 고혈압과 당뇨 등으로 고생하기 싫으면 하루빨리 이 선택의 기로에서 지혜로움을 택하길 바란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과 지속하는 건 다른 힘이 필요하다. 시작하는 건 즉흥적으로도 가능하고 순간적인 감정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속하는 건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포기하고 싶고 하기 싫어지는 숱한 순간들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첨언하자면, 이렇게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성만이 아닌 의지가 중요해진다. 종종 이성을 넘어서는 의지를 의지해야만 지속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지속을 위해서 때로는 이성의 말을 과감히 듣지 않기로 결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 여기까지도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이제 뻔하지 않은 얘기를 해 보자.


자신의 삶에 어떤 성장이 필요하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고 낯설고 두려운 무엇인가가 때론 그것을 이루는 데 첩경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의외로 많다. 삶을 성찰할 줄도 알고 자기 객관화의 중요성도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 이들은 굉장히 앞서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스스로가 잘 안다. 실제로는 그런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제시하는 답은 ‘합리화’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자기기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것을 자기는 모른다. 이게 이들의 두 번째 패착이다. 정리하자면, 첫 번째 패착은 자기기만, 두 번째 패착은 자기기만이 자기기만인지 모르는 것. 아리송한가? 좀 더 풀어보겠다.


먼저 자기기만. 무엇인가를 호기롭게 시작해 놓고 언제나 끝까지 진행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럴듯한 합리화의 명수다. 언제나 이성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지속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온갖 머리를 다 써서 기어코 찾아낸다는 말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어느 정도 하다가 그만두고야 만다. 아마 스스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판단하고 또 이 시기를 넘어갈 것이다. 매번 이렇다. 이것이 이들의 패턴이다. 끝을 보지 못하는 것. 언제나 중도 하차하는 것. 그래놓고 그때마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 그런데 자신의 과거 히스토리를 잘 살펴보라. 어떻게 매번 그럴 수 있는가? 합리적이었던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던 것 아닌가?


이들이 어려워하는 순간은 이때다. 스스로 그 일을 시작하기로 결단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스스로 뒤집어야 하는 순간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 놀랍게도 이들은 그것을 용케도 해낸다. 이 성취가 그러나 그들의 인생을 정체시키는 근원적인 이유다. 아마 이들의 머리가 가장 활발하게 돌아갈 때도 이때일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스스로를 뒤집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한다는 것이. 전력을 다하여 정체하기로 선택한다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 그러려고 머리를 그렇게 빨리빨리 돌렸단 말인가.


자, 이제 이 글 앞에서 말했던 체력과 연결시킬 타이밍이다. 그렇다. 이 비겁하고 비열하게까지 보이는 자들이 저지르는 자기기만의 주요 기작이 바로 체력이다.


어떤 일을 지속하기에는 현재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그만두는 게 낫다고, 이렇게나 바쁘고 몸이 힘든데 저 일을 지속할 가치가 있겠냐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한두 번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너무나 분명한 이유로 보인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만약 이게 진짜 이유라면 왜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는가? 여지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 아닌가? 진짜 이유는 체력 고갈이 아니라 의미를 찾지 못해서, 혹은 낯설고 두렵고 부담스러운 저 일을 하지 않고 편하고 싶기 때문 아닌가? 결국 초기에 그 일을 하기로 택했던 이유들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 아닌가? 한 마디로 그냥 하기 싫어진 것 아닌가? 현재 당신의 성장 여부는 당신이 얼마나 편한가 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게 되었기 때문 아닌가?


결국 체력 부족은 당신의 핑계일 뿐 실질적인 이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납득하기 위해 가장 그럴듯한 이유이자 남들이 인정할 만한 이유가 체력 부족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매번 당신은 체력을 증진시키지 않기로 은연중 다짐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체력이 갖춰지면 나중에 어떤 일을 그만둘 때 들 핑곗거리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아, 정말 비극 아닌가.


늘 나약한 체력의 소유자. 자신의 안정적인 자리 이면에 놓인 답답함을 하소연하면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자. 그러나 정작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내봤자 여러 면에서 힘들다는 이유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자. 나는 당신을 비겁하다고 말한다. 비열하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앞으로는 적어도 뭔가 성장하고 싶다거나 안정적인 자리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떠벌리지 말아 달라. 그냥 당신의 고인 물에 갇힌 채 천천히 물과 함께 썩어 가라. 제발 조용히 가만히 있어라. 당신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건 안정성 아닌가.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등 따시고 배 부른 곳에서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그 힘든 시련을 감당할 각오도 하지 않고 성장과 발전을 원하는가? 요요 현상은 시행착오가 아니라 퇴보를 불러온다. 차라리 정신적 비만 상태에 머물러라. 자족하면서 편하게.


그러나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당신이 해야 할 것은 간단하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 말고, 지금껏 해왔던 것 중 한두 개 이상을 그만 두기로 작정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 24시간을 25시간으로 활용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시간을 만들어라. 당신이 너무 편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도 받는 것 같은 일, 그러나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는 별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 그런 일들을 손에서 놓으라. 그러면 시간적 여유, 정신적 여유가 생길 테니. 더 이상 체력 부족을 핑계댈 필요도 없을 테고.


버려라. 취하기 전에. 변화하고 싶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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