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쓰기

글쓰는 일상

by 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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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육체적으로 힘에 부치거나 심적으로 불안할 때 나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책이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땐 시간은 어김없이 째깍째깍 잘도 돌아가는데 나는 뭐 딱히 하는 일 없이 하루가 흘러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몹시 피곤하다. 일도 일상도 모두 기계적인 움직임으로만 점철되어, 나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속품이 된다. 그런데 내 이성이 인지하기도 전에 한 달 전부터 책이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아내가 한국으로 가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결코 안정적이라 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지만, 적응의 동물인 나는 이런 가운데서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한 셈이다. 내 이성은 아직 아니라고 하는데도 몸과 마음은 벌써 길들여져 버렸다. 어딘가에 익숙해진다는 건 늘 두려운 일이다.


다행이란 생각이다. 책에 익숙했던 지난날들이 내 안에서 꽤나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다시 책을 손에 놓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나에겐 책이 도피처였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건 어느 정도 유지되고는 있지만 그 절박함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또 괜찮은 것 같다.


밥벌이 일을 하지 않을 땐 여지없이 책을 든다. 책을 읽고,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가도 다시 깨어나 현실을 돌아보고, 그러다가도 다시 책 속 세상으로 빠져 들어간다. 어떤 문장이나 단어가 마음에 꽂히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던 내 기억의 파편들이 일부 숨을 쉬기 시작한다. 버튼이 눌러지는 순간이다. 글은 그때 나온다.


그래,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쓰기 위해 이런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쓰는 일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지만, 나에겐 그것이 일종의 방출구랄까 삶의 흔적이랄까, 아무튼 글을 쓴다는 건 내게 일상이 되었다.


거품이 더 빠졌으면 한다.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 글은 타자를 위하기보단 자기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에, 글을 쓴다는 행위는 이기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개별적인 글이 어떤 보편성을 띠게 되면 더 이상 사적인 경계 안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과도 같은 상상력을 자극시켜 공감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의 파편들에게도 글은 생기를 불어넣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이나 음악도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도구가 되어주지만, 글은 감성과 이성의 공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닐까 한다. 글만이 할 수 있는 그 매력, 나는 과연 어디까지 추구할 수 있고 어디까지 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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