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단상.
10월의 마지막 날. 여기 캘리포니아엔 다시 기온이 올랐다. 온도계는 화씨 85도를 찍는다. 토요일마다 의식처럼 실행되는 밀린 설거지와 집 청소를 아들과 함께 마치고, 모인 쓰레기를 비우러 슬리퍼를 끌며 밖을 나섰다. 앞서가는 아들 녀석. 부쩍 커버린 아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산책을 나가면 흐린 날씨에 선선한 바람이 우릴 맞이했는데, 오늘은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더운 햇살이 우릴 맞이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대부분 광고지와 전 집주인에게로 배달된 것 같은 우편물을 확인하며 아들에게 물었다. 수영할까 우리? 아들은 망설임 없이 응 이라고 대답한다. 친구 같기도 한 아들이 옆에 있어서 좋다.
차가운 수영장에 몸을 담그니 정신이 번쩍 든다.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자쿠지에 앉아 주위 풍경을 감상하며 사색에 잠기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말초적인 차가움에 온 정신이 쏠려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 과연 고통 가운데서도 나는 타자를 생각하고 배려하며 도울 수 있을까? 내게 따뜻한 물과 같은 여유가 없어도 나는 내 것을 남과 나눌 수 있을까?
물놀이를 하면 아들은 다시 아기로 돌아간다. 핫휠스 장난감 자동차 두 개를 차례를 번갈아가며 줍기 어려운 곳에 투척하고 주워낼 수 있는지 보는 게임을 하며 아들과 보내는 시간은 꿈만 같다. 차가운 물도 이런 행복은 앗아가지 못한다.
올해도 두 달밖에 안 남았다. 미국에서 10년 간 경험했던 가장 조용한 할로윈이 소리 소문 없이 끝나고, 11월에 있을 땡스기빙, 그리고 12월의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연말 코스가 시작된 것이다. 예년과는 사뭇 다를 분위기겠지만, 그래도 시간은 똑같은 속도로 간다. 조금 더 이 순간을 붙잡고 온전히 느끼며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