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질문에서 벗어나기
‘무엇을 선택했는가?’가 아닌, ‘무엇을 희생시켰는가?’를 묻자.
철수는 A 대신 B를 선택했다. 그동안 철수에 대해 궁금했던 영희는 이 선택 때문에 철수가 어떤 사람인지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은 전 인생에 걸쳐 지속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일차함수의 직선 형태가 아니라 양자 도약과 같은 패턴에 가까운 것 같다. 우린 타자를 조금씩 알아가지만, 어떤 특별한 순간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거나 누적되어 왔던 정보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는지 관찰하는 순간이다. 마치 철수가 A가 아닌 B를 택한 것을 영희가 지켜보는 그 순간처럼.
세상이 이분법으로 나뉘진 않지만, 양자택일의 선택은 의외로 많이 우리 인생에 포진해 있다. 우린 하루에도 이분법적인 선택을 여러 번 하게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치 습관처럼,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양자택일도 무게를 가진다. 그래서 자연스레 무게중심을 가진다. 영희의 말을 들어보면, 영희의 마음에 자극을 주고 그 자극이 확신이라는 열매로 맺힌 이유는 철수가 A를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B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철수가 잡은 A 때문이 아니라, 철수가 버린 B 때문에 영희는 철수의 됨됨이를 알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하게 되면, 선택된 대상은 현재 내 손안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다분히 미래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무언가를 이루어 나가야 하거나, 어떤 새로운 목표 같은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되지 않은 대상은 현재 내 손에서 당장 없어져 버린다. 버려짐은 현재형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타자가 무엇을 희생시키는지를 보면서 그를 이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령 이런 식이다. “어떻게 A를 선택할 수 있지?”라는 질문을 뜯어보면, “어떻게 B를 희생시킬 수 있지?”라는 질문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A의 가치 있음’ 보다는 ‘B의 가치 없음’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철수는 성공하기 위해 가족을 희생시켰다.” 어떤가? 눈치챘다시피, 이 문장은 보통 이런 식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다음 문장으로 대체된다. “철수는 성공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렇다. “가족을 희생시켰다”라는 구절은 보통 삭제되기 일쑤다. ‘A의 가치 있음’ 보다 ‘B의 가치 없음’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희생되는 B는 보통 숨겨지기 때문이다. A의 가치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B는 아예 거론되지도 않는 것이다.
누군가가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다는 일화는 일반적으로 존경과 질투를 야기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희생시킨 것들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기 전에는 그 존경과 질투를 잠시 연기해 두는 것도 어쩌면 정신 건강에, 혹은 차후에 후폭풍으로 불어닥칠 수 있는 거대한 실망과 배신감으로부터 미리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예방책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