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잘 풀려서 열심히 하는 사람 vs. 열심히 해서 일이 잘 풀린 사람
세상의 단상.
일이 잘 풀려서 열심히 하는 사람 vs. 열심히 해서 일이 잘 풀린 사람
시간이 지나면서 전자는 자신이 후자라고 점점 믿게 된다.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었다고, 자신처럼 하면 된다고, 자신의 과거를 채색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 부류의 사람은 자신과 같이 시작했으나 일이 잘 안 풀려서 결국 열정도 식고 그만둔 동료를 향해서 연민은커녕 쓴소리를 날린다. “네가 더 열심히 했으면 너도 잘 풀렸을 거야.”
노오오력을 물고 늘어지면 그 어떤 사람도 헤어날 수 없다는 걸 잘 알 텐데도 말이다. 이런 말을 해서라도 자신의 일이 잘 풀린 이유를 자신의 열심에서만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교만. 자기애. 나에게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혹 겸손의 말로써 (물론 가식적인 겸손이다) “운이 좋았어요”라고 할 때조차 이들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는다. 그 이중성이 너무도 그럴듯하게 상대방에게 먹혀서, 너무 맘에 들어서 속으론 쾌재를 부른다.
이런 부류는 오로지 중요한 건 성공이라는 결과일 뿐인 세상이 낳은 뮤턴트다. 이들의 능력을 폄하하고 싶진 않지만, 찬양하고 싶지도, 따르고 싶지도 않다. 이들이 내뱉는 자기 계발 서적인 노하우엔 기름이 끼어있고, 무엇보다 재현 불가능하다. 아마 그 자신이 다시 첨부터 그 방법으로 시작한다 해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알고 보면 불확실성이 훨씬 더 많은 세상에서 그것을 꿰뚫는 노하우라니! 하긴, 그 성공이란 결과에 목말라 그런 것들을 구매하고 흉내 내는 사람들이 이리도 넘쳐나니!
모든 게 과정이다. 성공도 과정의 일환일 뿐이다. 나는 이 생각이 점점 더 맞다고 믿게 된다. 이 생각의 흐름에 진정성과 인간됨, 그리고 신앙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움직인다. 결과론적인 세상에서 과정의 아름다움을 강조해봤자 한낱 웃음거리로 여겨지겠지만 (게다가 성공이란 결과를 손에 쥐고 있지도 않으면서), 그럼에도 나는 이 멋진 저항의 물결에 합류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배에 겨우 탈 수 있었음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내가 열심히 해서 얻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