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짐에 대한 저항
경이감.
낯선 조우는 반복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우리가 가끔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다. 우리 인간은 모든 일이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길 원하면서도 뜻밖의 일을 기대하기도 하는 모순된 존재다. 미화하고 싶진 않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은 종종 인식의 깊이와 너비를 확장시켜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출근하는 길에 마주한 산 가브리엘 산맥에 눈이 내려앉았다. 며칠 전 여긴 비가 내렸지만 저 멀리 북쪽엔 눈이 내렸다. 햇살을 받아 장엄하게 음영을 뽐내며 북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산들. 내 눈 앞에 펼쳐진 절경. 마치 머지않아 도래할 나라가 이미 나의 ‘지금, 여기’를 침투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전율이 일었다. 언젠가 낯선 여행지에서 조우했던, 살짝 긴장된 환희를 느꼈다.
Default. 가만히 있으면 타성에 젖기 마련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저항해야 할 이유다. 나이가 들어가며 우린 아주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조금 더 성숙해지기도 하지만, 거부할 수 없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점점 잃어가는 생기, 그리고 가끔 ‘노련함’이라고도 칭송하곤 하는 익숙해짐 혹은 매너리즘이다.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했지만, 다만 나는 영혼 없는 베테랑이 되지 않길 오늘도 기도한다.
아이와는 달리 어른은 경이감에 좀처럼 사로잡히지 않는다. 우린 나이가 들면서 경이감을 상실한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별이란 오랜 시간 지구를 향해 날아온 빛이 이제야 도달한 증거일 뿐이며, 그것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창이라는 천체물리학적 정보를 우린 알게 되었다. 무지개는 빛과 수증기가 만나면서 굴절, 분산되어 가시광 영역만이 우리 눈이 포착되는 현상이라는 물리학적 정보도 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밤하늘의 별을 보거나 비 온 뒤 무지개를 마주할 때 숨을 죽이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며 경이감을 잃어버리게 되는 건 슬픈 일이다.
그리스도인에게도 경이감은 신앙에 있어 근간에 해당되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저 너머를 동경하고 어두움 가운데 빛의 임재를 소망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본능일 것이다. 과학적인 정보를 알아감에도 여전히 경이감을 잃지 않는 사람. 나아가 그것이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가 깃든 흔적임을, 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 21세기 현대를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이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기본자세가 아닐까. 마음이 투명하고 눈이 깊은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비슷한 거 쌔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