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달의 사람.
그는 달의 사람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는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들은 대로 달이 차고 지는 날을 삶의 시작과 끝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달이 없는 그믐이면 그는 슬프다. 그의 삶도 저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내일이면 가느다란 눈썹 같은 달이 그를 찾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달이란 기간은 그에게 삶의 기본 단위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일 년을 살아도 다른 사람들보다 열두 곱절은 더 성숙해졌다. 무언가를 매듭짓거나 포기했을 뿐인데, 그의 분별력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지식을 그는 달에게서 배웠다.
새로운 달이 오면 그는 마음이 새로워졌다. 지난달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던 모든 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는 매달 새로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 자유는 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언가에 매여 산다는 건 그에겐 길어야 한 달이었다. 한 달이면 그의 고뇌는 끝이 났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살면서 포기만 잘해도 인생을 멋지게 살 수 있다고.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는 가슴 깊숙이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역시 나이가 들었다. 어느 날, 그 달의 그믐이 찾아오기 이틀 전, 그는 한 여자를 만났다. 가슴에서 꽃이 피었다. 그믐이 되어도 그의 가슴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차가워지지도 않았다. 대신 해처럼 환하고 뜨거웠다. 처음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이 차고 지는 게 굴레로 여겨졌다. 모든 것을 그렇게 끝내고 새로 시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것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2. 해의 사람.
그녀는 해의 사람이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해도 그녀는 그런 것 따위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세상엔 지나가는 것과 남는 것,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녀는 변하지 않고 남는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절망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변하지 않고 남는 것들을 마음에 품고 그것들로부터 마음에 위로를 얻으며 살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시간 따윈 큰 의미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을 자는 여느 인간과 똑같은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시간을 초월한 상태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갔다. 매일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져도, 그녀는 내일 아침 다시 뜰 해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밤을 보냈다. 낮 동안에 충분히 받은 열기로 차가운 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으며 그녀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겼다.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언제나 초월적인 저 너머를 꿈꾸는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그녀는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에게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아픔을 공감할 줄 몰랐다. 한낱 지나가는 것들에 왜 그리 집착하는지 그녀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은 언제나 저 위를 향했고, 낮은 자들에게 따뜻한 빛이었지만, 그녀의 발은 종종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해도 다가갈 수 없었다. 그녀는 따뜻한 빛이었지만 동시에 섬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살면서 변하지 않는 것만 붙잡아도 인생을 멋지게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녀는 가슴 깊숙이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 역시 나이가 들었다. 어느 날, 시간을 알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온기에 취해 있을 무렵,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났다. 가슴이 차가워졌다. 그러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꽃이 그녀의 가슴에서 피어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자신의 발 끝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온전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따뜻해도 그것이 혼자만 누리는 것에 불과하다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 의아해졌다. 모든 것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김영웅의소설과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