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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May 17. 2021

간판과 거품 사이

감상에 젖어들기 그리고 글쓰기

간판과 거품 사이: 감상에 젖어들기 그리고 글쓰기.


글은 내 안에 있지만 아무 때나 끄집어내어 종이에 쏟아놓을 수는 없다. 그러려면 어떤 특정한 환경이 필요하다. 그 환경이 주는 감상에 젖을 필요가 있다. 흔히들 시상이 떠올랐다거나 영감을 얻었다고 표현하는 순간이다. 똑같은 단어들로 구성되더라도 어떠한 감상에 이끌리는지에 따라 글의 결이 달라진다. 명제적 진술로만 이뤄진 딱딱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좀처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뭐 그런 쓸데없는 걸 신경 쓰냐고 타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쓰는 작가에겐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글의 결을 바꾸어 글의 맛을 확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경험이 많은 작가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글쓰기 환경이 있다. 그 환경에서 본인이 만족하는 글의 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환경이란 특정한 시간대를 의미할 수도 있고, 특정한 공간이나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의미할 수도 있다. 


글의 결과 맛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환경이 특정한 감상을 선사하고, 작가는 그 감상에 기꺼이 젖어들어가 자기 안에 있는 글을 끄집어내어 종이에 쏟아붓는 것이다. 문학작품이 골치 아픈 수학 문제 푸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성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상에 젖지 않은 채 이성만으로 글을 쓰게 되면 계산적이고 메마른 글이 탄생한다. 보통 글 좀 잘 쓴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은 이러한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그 표현형 중 하나가 바로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이다. 자칫 현학적으로 치닫기 쉽고 생소하지만 허세를 부릴 수 있을만한 단어를 선택하게 된다. 좋은 글은 수학 공식이 아니다. 글에서 감상이 빠지면 거기엔 문자와 정보만 남는다. 글은 간판이나 안내 표지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기만의 글은 자기만의 감성에 젖어들 때 탄생한다. 그러므로 글이 잘 안 써진다고 불평할 땐, 본인의 부족한 역량만을 질책할 게 아니라, 그 부족한 역량으로도 자기 수준에 맞는 글을 자기 안에서 최대한 끄집어낼 수 있도록 본인이 선호하는 감상을 찾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문학성이 들어간 만족스러운 글을 쓰는 하나의 지혜다.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는 것. 언제 어디서 자기 안에 감춰진 보물을 끄집어낼 수 있는지 파악해두는 것. 물론 이런 지혜는 관찰하고 읽는 과정을 어느 정도 수련한 이후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글은 기교로만 가득 찬 거품, 금방 사그라드는 거품이 된다. 자기만의 감상. 자기만의 고유한 글. 단순히 잘 쓴 글을 넘어서는 중요한 다음 단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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