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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Aug 28. 2021

글을 잘 쓰고 싶은 이유?

글을 잘 쓰고 싶은 이유?


글을 잘 쓰고 싶은 이유를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원초적인 시기와 질투가 이유라면 당신은 아직 진지하게 글쓰기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당신의 그 시기와 질투의 이유를 한 꺼풀 벗겨내면 허세라는 두 글자가 그 어두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시기와 질투가 글쓰기의 동력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힘을 발휘하는 한 어느 정도까진 발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곧 그 열기는 식고 말며, 조금 후에는 오히려 글쓰기의 무용성이나 주장하는 등, 글쓰기를 연습하는 주위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다. 마치 글쓰기를 하는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은 이유를 가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면서 말이다. 시기와 질투는 겸손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타자를 자기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발산하는 방향과 형태가 정반대라서 타자를 세우기보단 파괴하는 쪽으로, 덩달아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내게 마련이다. 파괴적인 제로섬 게임에는 배움도 존중도 발전도 없다.


시기와 질투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아니라면, 혹은  단계에서 다행히 벗어났다면, 다음으로 생각해볼  있는 이유는 크게  가지다. 하나는 감추 위해. 다른 하나는 드러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글이란 표현하는 수단이기에 감추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이게 모순이 아닌 이유는 감추고 싶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위장 혹은 위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목적을 가진 사람은 보통 어느 정도 문장력을 습득한 상태이기 때문에 나름 고급스러운 표현을 동원하여 그럴듯하게 진실을 은폐할 줄 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비밀과 유사하지만 다른, 예를 들어 99%의 진실을 담은 거짓을 100%의 진실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단 1%의 차이이기 때문에 이런 글쓰기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자칫하면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99%가 아닌 95% 혹은 90% 정도로 수위를 낮춰서 글쓰기를 실행한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글 쓰기를 잘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이 퍼센티지를 가능한 100%에 수렴하게끔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추기 위한 글의 본질을 파헤치면 놀랍게도 허세라는 두 글자가 동일하게 등장한다. 100%의 진실을 감추는 데에 성공했다는 자부심. 사람들을 모두 속였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낀다.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으로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은밀한 욕망. 허세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런 글쓰기는 쓰레기라 생각한다. 반짝이는 쓰레기.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경우를 나는 가장 올바른 형태의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있는 걸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걸 글을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기 생각을 글로 써낸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글로 써내기 이전, 혹은 자기 생각을 정리하기 이전의 우리 머리는 잡다한, 자주 모순되기도 하는 정보들이 온갖 뒤죽박죽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들은 얘기, 저기에서 들은 얘기들이 저마다 ‘내 얘기’라는 옷을 입고 있다. 한두 문장 정도의 짧은 글이나 몇 분 정도의 생각 정리로는 어떤 것이 내 생각이며 어떤 것이 주워들은 얘기인지 절대 분간할 수 없다. 시간을 내어 긴 글을 써보거나 집중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결코 자기 생각의 진위를 가려낼 수 없다.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를 쓰는 게 어려운 이유는 ‘있는 그대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논리를 가지고 인과관계를 따져보고 근거를 찾아보고 결론을 내려보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 얻을 수 없다.


글로 자기 생각이나 마음에 담긴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는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본인도 잘 모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부단한 노력 없인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게 아닌가 한다. 작가가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 때의 글쓰기는 한참 다음 얘기다. 작가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자기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아내는 과정을 견인하는 가장 주요하고 효과적인 수단일 것이다.

어떤 글을 보면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자신이 연마한 고급진 기술을 다 소진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한 문장 한 문장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 어디서 본 듯한 멋진 문장을 가져와 적당히 고쳐서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법도 어느 정도는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해버린다면 그걸로 끝이다. 언제나 허세나 떨면서 긴 글이 아닌 짧은 글로 아포리즘이나 구사하는 척하면서 흉내 내는 글이나 쓰게 될 것이다.


마음과 생각에 담긴 자기만의 그 무엇을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쓰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수많은 방해물과 장애물들을 처리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 필요하다. 특별히 화려하거나 멋진 문장이 없어도 간결하고 진정성이 묻어나며 길어도 잘 읽히고 읽고 나면 무언가 남는 글은 하루아침에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한 문장의 세렴됨 따위를 보고 잘 쓴 글이라고 판단하는 경솔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소로움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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