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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Sep 13. 2021

책, 기억

책, 기억.


가끔은 책 냄새에 압도되는 도서관에 앉아 하루 종일 책만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다가 집중이 흐트러지면 저 책을 읽고, 그 책도 지겨워지면 또 다른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공간. 책들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웬만하면 내가 앉아있는 자리 주위에 조금은 무질서하게 보일지라도 산처럼 쌓여 있으면 좋겠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학교 도서관이 지하였다. – 건물의 정면에서 보면 지하인데, 뒷면에서 보면 지대가 낮아서 지하가 아니라 1층 같았다 – 하지만 건물의 모퉁이에 위치해 있어 오후엔 커다란 창을 통해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졌었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종종 도서관에 들러 그 햇살을 받으며 책을 빌리거나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지하실 특유의 습한 냄새와 함께 오래된 책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공감각적인 기억은 이런 힘이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오래가며, 가끔 매복한 군인처럼 불쑥 튀어나와 현재를 물들인다. 그 당시엔 잘 몰랐다. 그 시간이 장차 나에게 어떻게 기억이 될지. 그 햇살과 냄새와 책들이 삼십 년도 더 지난 지금 중년의 나에게 이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될지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옛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책은 내게 아련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말이다. 서른 후반에 다시 시작한 제2의 독서 여정.  과연 이 시기도 아련하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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