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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Sep 20. 2021

3찰

관찰, 성찰, 통찰

3찰


어떤 작품은 급하게 내리는 소나기와 같아서 읽는 이의 마음을 일시에 흠뻑 적시는가 하면, 또 어떤 작품은 가랑비와 같아서 읽는 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마음을 적신다. 작품을 읽어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후자의 작품을 선호한다. 갈수록 더 그렇다. 헤세의 말처럼 나도 좋은 작품은 천천히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우러나오는 그 맛을 나는 사랑한다. 급하게 먹어 해치우는 작품이 아닌, 가만히 음미하는 작품. 음미는 풍미를 충분히 즐기며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언젠가부터 천천히 움직이는 것들의 매력에 대해서 조금씩 눈을 떠나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삶의 진리가 많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들 역시 이러한 천천히 움직이는 것들에 속한다. 워낙 진행이 느리고 순간 임팩트가 작기 때문에 그것들의 움직임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쩌면 이 순간이야말로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실감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성이 아닌 믿음일지도 모른다.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믿음. 이런 믿음을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천천히 움직이는 것들은 은근함을 가지고 오래간다는 특징을 가진다. 패스트푸드와 슬로푸드의 차이랄까. 압도적인 서사나 기발한 발상 등으로 독자를 단시간에 장악하여 혀를 내두르며 항복하게 만드는 작품보다는 일상의 평범한 소재들로 보편적이면서 탁월한 통찰을 이끌어내는,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내밀한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 조금씩 빠져들게 만드는 작품이 나는 좋다. 그 은근함은 내겐 치명적인 매력이며 언제나 기다려진다. 독서를 지속할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 차이를 현대 문학과 고전 문학의 차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강한 소나기나 패스트푸드의 힘은 기발함, 흡입력, 속도 등에 있는 반면, 가랑비나 슬로푸드의 힘은 평범함, 은근한 지속력, 풍미 등에 있다. 오래 굶어서 허기지지 않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나이가 중년 즈음을 이르거나 넘겼다면, 슬로푸드를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학에서는 어렵다거나 길다는 이유로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않은 채 고전 문학을 가까이하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슬로푸드가 건강에 좋고 풍미가 더 있다는 건 알지만 바쁘다거나 귀찮다거나 하는 등 현실적인 이유를 대며 오늘도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모든 현대 문학이 그렇진 않겠지만, 즉흥적이고 순발력이 뛰어나며 흡입력까지 갖춘 현대 문학의 장점은 급하고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 궁합이  맞는  같다. 그러나 나는 이런 독서 문화가 과연 ‘독서라는 원래의 좋은 의미를  살려내고 있는지 의문이  때가 많다. ‘여유라는 단어가 현대인의 독서 스타일에 비추어볼  궁색하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은 읽어야 되겠고 시간은 없으니 독서마저도 급하게 쫓기면서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없다. 나는 순간을 때우는 듯한  읽기보다는 자기 삶을 돌아보고 내면을 성찰하여 묵직한 통찰을 얻어내는  읽기가  시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굳이 많은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좋은 책을  골라 차라리 여러  읽는   낫다고 본다. 3 (관찰, 성찰, 통찰)   없다면  독서는 독서라   없다고 생각한다. 잡지나 신문 등이나 뒤적거려선 정보만을 입력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가 아니다. 3찰이다. 독서는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무료 수단이며 유일한 수단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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