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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Dec 14. 2021

글로 담아낸 목소리

가즈오 이시구로 저,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을 읽고

글로 담아낸 목소리


가즈오 이시구로 저,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을 읽고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집)


멜로디와 가사가 아무리 좋아도 적당한 목소리를 만나지 못하면 그 곡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같은 곡도 부르는 목소리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편곡과 개사 역시 곡을 다른 느낌으로 들리게 할 수는 있지만 목소리만큼의 직접적이고 직관적이며 심금을 울리는 강력한 힘은 갖지 못한다. 우린 귀로는 멜로디와 가사를, 마음과 영혼으로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어떤 노래를  들을 때 마음에 감동을 느끼는 것도 목소리의 힘이 크다. 누가 부르느냐, 즉 곡 자체보다는 가수, 다시 말해 목소리가 곡의 전달에 있어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가사가 아닌 목소리에 집중한다. 텍스트로 된 가사가 아닌 다양하고 다채로운 목소리의 고유한 음색 (질)과 성량 (양)을 글로 담아낸다. 이것이 비밀이었다. 이것이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비법이었다. 정확한 문장을 고집하는 신형철의 글쓰기론으로는 도무지 가즈오 이시구로의 글쓰기를 설명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는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노래의 중간쯤 가수가 우리에게 자신의 가슴이 찢어진다고 토로하는 순간이 나옵니다. 그 감정 자체와,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몹시 애쓰지만 결국 굴복하고 마는 저항 사이의 긴장 때문에 그 순간은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


이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 이 자리에서 제가 다른 많은 경우에도 가수들의 음색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랫말보다는 가수가 노래하는 방식에서 말입니다. 모두 알듯이 노래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는 헤아릴 길 없이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을 표현합니다. 여러 해에 걸쳐 구체적인 면에서 내 글쓰기는 여러 가수들, 특히 밥 딜런, ……, 의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뭔가를 포착하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중얼거렸습니다. “아, 그래, 이거야. 이게 내가 그 장면에서 포착하고자 했던 거야. 이것과 아주 비슷한 그 무엇이라고.” 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수의 목소리 속에는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겨누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


목소리는 곧 사람이다. 이성으로 좀처럼 포장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자 깊은 영혼이 묻어 나오는 그 무엇이다. 그 시간 그 공간 특이적인 성질을 가지는 동시에 그 사람만의 고유한 특색도 담아낸다. 우리가 어떤 글을 읽고 말할 수 없이 묵직한 전율이나 울림을 느끼는 건 이성보다는 정서를 통해서다.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이성적이기보다는 정서에 호소하고 또 그것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가사가 아닌 목소리를 텍스트로 담아낸 글이야말로 좀처럼 쉽게 설명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참고로 원제는 ‘My twentieth Century Evening and Other Small Breakthrough’인데, 한글 제목에서 Evening을 ‘저녁’으로 번역한 건 뭔가 어색하다. 20세기가 지는 시점, 그러니까 21세기를 맞이하기 직전의 시기를 의미하는 문학적인 수사로 읽는 게 자연스럽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글에 어울리게 ‘황혼’이나 ‘저물 무렵’ 정도로 번역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민음사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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