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몸만들기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읽기와 쓰기, 서사와 묘사, 문장력과 필력, 문체와 개성에 이르기까지 글쓰기에 관련된 여러 사항들을 생각나는 대로 짚어봤다. 이 시리즈의 글은 일과 시간 중 짬이 날 때마다 두서없이 노트에 적어놓은 것들을 이어 붙인 글에 불과하다는 점을 양해 바란다. 퇴고는 일절 없는 글일뿐더러 의식의 흐름대로 마치 누군가가 불러주는 말들을 받아 적듯 써 내려간 글이기 때문에 전혀 진지하게 읽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마치 글쓰기 선생인 것 같은 뉘앙스가 내 글에서 풍길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미숙하기 때문이고 내가 글쓰기 마스터라고 여겨서가 아니라 내가 겪은 시행착오에서 배워나간 것들로부터 쓴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함임을 알려둔다. 나는 글쓰기 선생이 아니다.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여전히 쓸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이 많다. 타자의 글쓰기를 가르칠 자격이, 그럴 만한 자격이 나에겐 없다는 걸 잘 안다. 다만,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하고 있을 법한 수많은 글쓰기 동지들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위로와 조언의 역할을 하고 싶을 뿐이다. 글쓰기를 진지하게 여긴다면 그 여정에서 만나게 될 숱한 실망과 절망과 슬럼프와 자기애의 무한반복으로부터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어떡해야 합니까?” 글을 조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중엔 “어떡하면 책을 쓸 수 있습니까?라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질문을 하는 사람도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여러 권 글쓰기에 관계된 책들을 사서 밑줄 그으며 읽어도 보고, 서점에 가서는 항상 그런 책들을 뒤적이며 혹시 내가 모르는 비법이 있지 않을까 하며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턴 그만두게 되었다. 시중엔 이런 분야에 대해 출간된 책들만 해도 수십 권은 족히 넘을 것이다. 아주 소수의 책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다 비슷한 말을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자에겐 좀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 책들을 쓴 사람은 자기가 글을 잘 쓰기 때문이 아니라 글 잘 쓰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나는 자기는 못 해도 잘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놀라울 따름이다. 하긴 실제로 살아내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별개인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그리 놀랄 것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무언가를 가르치는 수많은 선생들은 언제나 새겨 들어야 할 말일 것이다.
좋은 글의 요소는 이전 글에서 여럿 언급했지만, 그것들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글 쓰는 몸 만드는 일보다 중요하진 않다고 말하고 싶다. 말하자면 기초체력, 즉 근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글은 글 쓰는 몸만들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중요성을 짚어볼까 한다.
뻔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의 비교가 글 쓰는 근력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당한 비유이지 않을까 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과 글 쓰기를 즐기는 사람. “자, 둘 중 누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좋은 글이란 게 인생의 단 한 번만 쓰는 것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일회성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적절한 질문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누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누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많을까?”로. 물론 이 질문 자체가 엉뚱하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엉뚱함과 막연함을 느끼면서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만으로도 이 비유는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질문은 여러 해석과 주장으로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몸 글의 맥락을 눈치챈 독자는 알겠지만, 나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자 이 비유를 들었다. 그렇다. 나는 단순히 잘하는 것보다 그것을 즐기는 것에 더 가치를 둔다. 그리고 글쓰기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하는 것임을, 그래서 글쓰기는 곧 일상에 침투하여 숨 쉬고 있는 생명을 가진 그 무엇으로 나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알려둔다.
성실과 지속이라는 요소에 강조를 하게 되면 둘 사이의 차이는 더 커진다.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사람의 잘 쓴 글과 글 쓰기를 즐기는 사람의 잘 쓴 글을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슷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그 글이 어떤 시험을 본 것처럼 일회성의 글일 때에 한해서 그런 것일 뿐이다.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매번 탁월하게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 글쓰기에는 마스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저 쓸 때마다 낙숫물이 바닥을 뚫듯 아주 조금씩 진화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느 정도 필력을 갖춘 사람들의 글을 들고 와서 누가 더 잘 썼냐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모욕일지도 모르겠다. 비교는 자신이 과거에 썼던 글과 하면 된다. 예전에 썼던 글을 꺼내어 다시 읽었을 때 부끄러움이 먼저 느껴진다면 그만큼 발전한 거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체력을 가진 사람과 매일 기초체력을 단련하는 사람이 달리기 시합을 한다면 누가 이길까? 이 질문은 앞서 언급한 글을 잘 쓰는 사람과 글 쓰기를 즐기는 사람 중 누가 더 글을 잘 쓸까? 하는 질문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단 한 번의 시합이 아닌 여러 번에 걸친 시합으로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일 년 동안 총 52회에 걸친 시합을 한다면 당연히 기본적으로 타고난 체력을 가진 사람보다는 매일 기초체력을 단련하는 사람의 승률이 높을 것이다. 글 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글쟁이라고 불리는 사람보다는 성실히 글쓰기를 지속하여 연습하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쓸 기회를 더 많이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잊지 말자. 글은 영화처럼 인생에서 빛나는 순간이 아닌 일상처럼 빛바랜 채 인생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시간과 함께 하는 것임을.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화려한 무대 위에 올릴 글이 아닌 일상을 노래하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나는 쓴다, 하는 마음. 나아가, 누가 뭐래도 나는 글 쓰는 게 좋다, 하는 마음까지. 글쓰기 여정에서 좌절과 자뻑의 무한루프에 잠식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자와 자신을 비교하기 이전에 글쓰기와의 화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로부터 위로와 안식과 행복과 만족도 느껴보는 등 글쓰기가 호흡을 하는 생명체가 된 것처럼 없어서는 안 될 친구 중 친구, 평생 동반자로 여겨질 때까지 말이다. 이 인식이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매일 글쓰기를 성실히 지속하는 과정이 바로 글 쓰는 몸 만드는 일이다. 근력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겨나게 된다. 글쓰기 수업을 받거나 어떤 책을 사서 도움을 받는 것도 어느 정도 유익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애착과 절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애착과 절박은 영화 같은 순간이 아닌 일상이라는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그 무엇인 동시에 일상을 향하고 일상을 노래하는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뼈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나는 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글 쓰는 근력은 애착과 절박과 함께 성실과 지속이 맺어내는 열매인 것이다.
그렇다면 글 쓰기를 ‘즐긴다는’ 표현은 정말 함부로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이게 된다. 글쓰기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처럼 여기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그 무언가를 진지하게 정면으로 맞서서 숱한 시간을 씨름하는 인고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고진감래는 운동선수에게도 통하지만 글쓰기에서도 통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대충 하면 그 인생도 대충 된다고. 그러나 진지하게 열심을 다하여 무언가를 치열하게 해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 무엇이 바로 즐거움이라고.
글쓰기 동지들이 소중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글쓰기는 외롭고 고독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지만, 그 길을 가는 동지들이 있어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건전한 토론 (토론은 ‘누가’ 옳은 것인지 혹은 더 좋은 것인지 가리는 게 아니라 ‘무엇이’ 옳고 좋은 것인지 가리는 게 목적임을 잊지 말자)을 기꺼이 해주는 동지의 존재는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이런 동지가 없다면 글쓰기 여정은 자칫 무사의 길로 너무 진지한 모드로 치달을 수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읽어 보면 그는 무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를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게 대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좀 꺼려지게 된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말이다.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에 머물지 말고 마음만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약삭빠른 샛길은 없다. 비법은 없다. 다만, 성실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지난할 여정일지도 모르지만, 즐거운 여정일 수도 있다. 부디 진정성을 잃지 말고 성실히 지속하길 바란다. 근력을, 글 쓰는 몸만들기를 게을리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