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을 사랑하기
어딘가로 떠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욕망에서 기인한다. 하나는 목적지에 가고 싶은 욕망, 또 하나는 출발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전자와 후자는 함께 하기도 하지만, 상호 배타적일 때도 있다. ‘지금, 여기’도 좋지만, 더욱 풍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지금, 여기’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목적지가 어디인지 별 상관없이 떠나는 여행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장이든 도피든 상관없다. 두 가지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금, 여기’에서의 결핍이 전제된 행동이다. 현재 주어진 환경에 모든 게 갖춰져 있다면 굳이 다른 곳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완벽한 곳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에게 여행은 언제나 요구되는 인생의 과정 중 하나다. 한 곳에 머무는 행위는 곧 ‘정체’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지금, 여기’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갖춰져 있는지에 상관없이, 혹은 결핍의 정도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거기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에게 여행을 떠나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준다.
나 역시 종종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주로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에 진절머리가 날 때인 것 같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똑같은 삶에 지쳐버려 삶의 의미를 상실할 때마다 나는 거기서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 혹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장소들이 여행 리스트에 오른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금세 그 욕망의 불꽃은 사라진다. 돈과 시간은 물론이며 무엇보다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주축은 일상이다. 나에게 여행을 가고 싶도록 부추기는 바로 그 삶의 현장이 내 삶의 주축인 것이다. 가장 애착을 가지고 행복해야 할 시공간이 가장 혐오스러운 시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이 자체가 어쩌면 비극일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생각할 때, 이 비극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일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일상이 여행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살려고 무한히 애쓰는 것. 현미경으로 인생의 세세한 모습을 관찰하다가 때론 망원경으로 그 인생을 한 발자국 떨어져 관망하는 것. 때론 줌인으로, 또 때론 줌아웃으로 인생을 바라보며 관찰과 성찰의 삶을 사는 것.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서서 나는 이렇게 렌즈를 조절하는 루틴이 점점 익숙해지고 좋아진다. 글쓰기가 이러한 루틴의 큰 도우미가 된다는 점은 꿀팁이다.
루틴을 사랑하는 삶은 여백을 비추는 삶이다. 내 삶이 어두운 이유는 아주 가끔 무대 위로 올려지는 빛나는 순간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바탕이 되는 여백이 어둡기 때문이다. 여백을 밝히는 일. 곧 여백을 사랑하는 일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사랑하는 일. 곧 루틴을 사랑하는 삶. 이는 동네 주변이 유명한 여행지가 되는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요즈음 주말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는 나에게 또 다른 일상으로 잦아든 루틴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뭘 더 바랄 게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지금, 여기’가 좋다.
어제는 아내의 셋째 이모님 환갑잔치에 참여하고 오는 길에 서천 신성리 갈대밭 (사진)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금강 하류에 자리 잡은 갈대밭, 그리고 그 시간 그 공간에 함께 한 나의 사랑하는 가족.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금, 여기’. 더 알아채고 만끽할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