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준인 정의와 불의
나는 정의가 구현되는 것보다 불의가 척결되는 장면에서 더 쾌감을 느낀다. 선한 자가 승승장구하는 것보다 악한 자가 파멸에 이르는 장면에서 더 짜릿함을 느낀다. 왜일까. 아마도 나의 모자람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내 안에 내가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나는 정의의 구현과 선한 자의 잘됨을 진심으로 바라는 것일까. 여전히 정의가 아니라 나의 유익에 부합하는 바가 구현되길 바라고, 선한 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 잘되길 바라는 게 아닐까. 어쩌면 불의한 자나 악한 자의 파멸도 그들이 나의 유익에 부합하지 않거나 내 눈에 거리끼는 사람과 동일인물일 때에 한해 기뻐하는 건 아닐까. 정의의 실현과 선한 자의 잘됨을 바라는지 묻기 전에 그걸 바라는 나 자신의 상태부터 점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