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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Nov 25. 2023

선물 같은 오늘

선물 같은 오늘


기온이 떨어지고 잠이 늘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그래봤자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 더 잠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지만, 그 두 시간은 하루를 행복하게 만드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된다. 특히 이렇게 추운 날에는 더 그렇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할 수만 있다면 단 며칠 만이라도 깨지 않고 연달아 자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건 미국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길면 두 시간, 짧으면 이십 분 정도마다 나는 밤새 깨고 또 깨며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나중에 상황이 좋아졌을 때에도 나는 잠을 연달아 네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언제나 중간에 한두 번 깬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여섯 시간에서 일곱 시간은 꼭 잠을 자려고 애쓰지만 말이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 시계를 쳐다보았을 때 자정이 조금 넘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여섯 시 십 분 전이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다섯 시간 이상 한 번도 깨지 않고 잠들었던 것이다. 덕분에 오늘은 큰 선물을 받은 자로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마침 시간이 여유로우신 장모님을 모시고 우린 금산을 향했다. 도리뱅뱅이와 민물새우튀김과 붕어와 잉어로만 만들고 인삼까지 넣은 어죽을 먹었다. 그리고 만인산 휴게소에 가서 커피와 호떡을 사 먹었다. 배부른 우리는 삼심 분 정도 근처를 걸었다.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가 콧구멍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행복은 행복할 줄 아는 자의 것이라는 생각. 잠 한 번 잘 잤다고 이리도 호들갑이냐 싶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큰 만족을 느낀다. 그 만족은 오늘 하루를 지배할 정도였다. 매일 밤 어제처럼 잠을 잘 잘 수 있길 마음 깊이 바라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오늘 같은 날은 영영 사라져 버릴 것 같아 함부로 소원을 빌지도 못하겠다. 선물 같은 오늘. 오늘은 행복했다 말할 수 있는 날로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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