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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Jan 08. 2024

글 쓰는 시간

글 쓰는 시간


누군가는 붓을 들면 세상이 고요해진다고 했다. 깊이 공감이 된다. 나 역시 글을 쓰려고 앉으면 고요를 느낀다. 마치 두터운 헤드폰을 쓰고 내 안으로 침잠하는 듯한 기분이다. 이내 소란스러웠던 세상은 한 발치 멀어지고 나는 그렇게 활자의 세계로 도피를 감행한다.


이 도피처를 모를 적에 나는 대체 어디로 내 생각과 마음을 숨겼던 걸까, 하는 생각이 오늘 저녁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 때 머리를 스쳤다.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글 쓰기 이전의 내 삶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주 먼 고대의 일로 느껴졌다.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글쓰기가 뭐라고, 내 삶을 리부팅시켰단 말인가.


커서가 깜빡이는 백지는 침묵한다. 편안한 침묵이다.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고요가 백지의 여백 안에 충만하다. 부재의 충만이랄까.


글자가 하나둘 늘어나도 그 고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부재의 충만에 질서가 부여된다. 검은 글자와 흰 여백의 조화 속에 나의 마음과 생각이 스며든다. 관찰은 성찰로 진화하고, 성찰은 통찰로 나아간다. 글 쓰는 시간. 내 삶을 충만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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