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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Mar 03. 2024

타인의 믿음을 이용해 먹으며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시키기

타인의 믿음을 이용해 먹으며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시키기


'Dune, Part 2'를 두 번 관람했다. 한 번은 MEGABOX DOLBY에서, 나머지 한 번은 CGV IMAX에서. 극장에서 영화를 일 년에 네다섯 번 정도 보는 나로선 특별한 시도였다. 무엇보다 집이 아닌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고, 글이 아닌 영화로만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시 보기의 묘미가 있다. 처음 볼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두 번 볼 땐 보인다. 미리 공부하고 영화를 보는 방법도 좋지만, 재관람 역시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영화를 위해 공부도 좀 하고 재관람까지 했다는 건 내가 얼마나 이 영화에 꽂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극장에서 본 영화 중 이렇게 나를 압도시킨 영화는 없었다.


어제 이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베네 게세리트의 모히암 대모가 이룰란 공주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가능한 나는 미국에서의 경험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가능한 원어의 맛을 느끼기 위해 영화를 볼 때에도 한글 자막을 의지하지 않고 직접 배우들의 대사를 들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이 문장은 너무 간단해서 그런지 더 기억에 남는 듯하다. 다음과 같다.


"Hope? We are Bene Gesserits. We don’t hope; we plan."

"희망? 우린 베네 게세리트다. 우린 희망하지 않는다. 계획할 뿐이다." (내 맘대로 번역)


가장 종교적인 집단으로 보이는 베네 게세리트의 우두머리 격인 대모가 간결하게 말하듯 그들은 희망하지 않는다. 희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 종교와 실제론 무관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종교적인 집단으로 보이는 걸까?


책을 다 읽지 않아서 원저자의 구상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아는 배경지식으로 판단할 때 베네 게세리트는 종교 집단이 아니라 종교를 이용해 먹는 집단인 것 같다.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해 자신들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이기적인 집단인 것이다. 그 목적은 퀴사츠 헤더락이라는 남자 베네 게세리트의 탄생이다. 퀴사츠 헤더락은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으며 인류를 구원으로 이끌 메시아와 같은 존재이고, 궁극의 힘을 갖는 초인이자, 베네 게세리트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즉, 베네 게세리트는 가장 종교적으로 보이지만, 종교를 이용해 먹는 집단에 불과하므로, 아이러니하지만, 그들 자체는 종교와 가장 거리가 먼 집단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챠니를 포함한, 아라키스의 북부에 거주하는 프레멘인 페다이킨들은 근본주의자들이 결집한 남부 프레멘들과 달리 메시아 사상을 믿지 않는다. 남부 근본주의자들에게 '리산 알 가입'이라는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준 장본인이 바로 베네 게세리트들이다. 나중에 그들이 원하는 퀴사츠 헤더락이 탄생되면 (그들은 이를 기다리지 않고 유전자 교배를 통해 혈통을 관리해 왔다. 그들의 계획상 폴 세대에 퀴사츠 헤더락이 나와야 했다) 스파이스의 원산지인 아라키스에 그가 자연스럽게 메시아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그래서 모든 아라키스인들이 베네 게세리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도록 미리 계획한 것이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베네 게세리트는 믿음이 아닌 과학을 전제로 하며 그들의 신념 대로 철저한 계획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집단인 것이다. 


말하자면, 타인의 믿음을 이용해 먹으며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하는 집단이 바로 베네 게세리트인 것 같다. 그들이 심어 놓은 메시아 사상에 심취하여 여러 세대를 통해 리산 알 가입을 기다리는 프레멘들을 보며 나는 종교의 본질적인 속성을 본 듯했다. 그것은 인간에서 출발하여 인간으로 끝나는, 그래서 유한하고 허무한 그 무엇이었다. 한 사람의 독실함의 시작이 누군가의 거짓 계획의 일부일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허를 찌를 정도로 끔찍하게 보였다. 종교는 집단 광기일 수도, 그리고 집단 광기로 만들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Dune, Part 3가 어떻게 진행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몇 년 후에나 개봉될 수 있을 기회를 갖겠지만 말이다. 책을 주문했다. 나는 이 소설 안에서 인간을 보고 싶고, 철학과 신학을 읽어내 볼 것이다. 이런 거대 서사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로서 빼놓을 수 없는 그 무엇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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