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다시 읽고
'나'라는 지하 세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다시 읽고
차라리 골랴드낀이 나았다,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름도 밝히지 않는 이 작품 속 일인칭 화자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지하’라는 또 하나의 세상에서 잉태된 최종 병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스로를 소외 혹은 고립시키면 사람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이 작품을 통해 여실히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조금 과장해서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이를 위해 도스토옙스키가 고안한 가상의 생체 실험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며 다시 조용히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도스토옙스키다! 아무렴, 이 맛에 도스토옙스키를 읽지! (그런데 왜 이 말을 하고도 나는 겸연쩍은 걸까!)
이 작품 속 화자는 '분신'의 주인공 골랴드낀의 연장선에 있으면서, 골랴드낀을 거뜬히 넘어서고, 나아가 골랴드낀을 향한 향수마저 들게 할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는 인물로 내게 다가왔다. 단절, 소외, 고립 같은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열등감, 자존감 결여, 과장된 허세 등의 단어로도 결코 해석할 수 없는, 실로 도스토옙스키가 창조해 낸 정신 이상자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골랴드낀은 자신의 분신까지 보고 정신 착란 증세를 일으켜 결국 작품 끝에선 정신병원으로 호송된다. 그러나 이 작품 속 화자는 여전히 건실한 자기만의 세상인 지하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간다. 골랴드낀은 적어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제부쉬낀처럼 최하급 공무원도 아니었다.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도 받고 있었다. 비록 타자로부터 소외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반면, 이 작품 속 화자는 타자로부터 소외되는 단계를 이미 지난 상태다. 타자로부터의 소외는 여전히 지상의 일에 속한다. 화자는 그 세상을 뒤로하고 지하 세계의 시민이 된 지 오래다 (화자가 지상 생활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2부를 이룬다). 게다가 타자가 아닌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단계에 안착한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그는 그 속에서 마치 삶의 밸런스를 맞춘 것처럼 나름대로의 안정성을 영위해나가고 있는 듯해 보이기까지 한다. 스스로를 소외시킨 결과는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살인을 계획하는 기회를 무한히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실천해도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상황까지 넉넉히 부여한다. 이런 면에서 작품 속 화자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르는 (물론 화자 스스로는 자신이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파악하고 있지만, 정신이 아픈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지상에 머물며 사람들의 눈에 발각되어 정신병원으로 끌려간 골랴드낀이 차라리 더 낫다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다. 작품 속 화자가 골랴드낀처럼 차라리 자신의 분신을 보았더라면, 차라리 정신 착란 증세를 일으켜 사람들에게 발각되었더라면, 그래서 정신병원에 끌려갔더라면 나는 차라리 안심이 되었으리라.
작품 속 화자는 세상을 피해 지하로 숨어 들어갔다. 먼 친척으로부터 그가 쉽게 벌 수 없는 큰돈을 유산으로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운명적이게도 그에겐 그 유산이 축복이 아닌 지하로부터의 초대장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지하 생활에서 그의 유일한 벗은 책이었다. 독서는 그에게 오로지 비뚤어진 자아를 증폭시킬 뿐이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 선 비딱한 자아를 더욱 비대하게 하고 강화시키기까지 하는 촉매제로 책은 그를 더 그의 내면으로 함몰시켰다. 책은 자아를 발전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타자와의 소통이 거세되면 자아를 파멸로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세상에서 책을 읽고 사유하고, 또 책을 읽고 사유하는 지하 생활. 이 단순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론 위험천만한 삶의 패턴이 바로 화자의 표면적인 일상이었던 것 같다.
그는 세상을 피했지만 세상을 모두 아는 것 같은 뉘앙스로 무수한 말들을 지껄인다. 1부를 이루는 말들은 언뜻 보면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것 같으나, 내겐 분열된 자아의 조각나고 편향된 단상들로 가득 차 보였다. 시대와 문화가 다르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그가 말하는 주제는 파악하기 쉽지 않았고 집중하기조차 어려웠다.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말하기보다 반복해서 가상의 독자 혹은 청자의 시선을 의식한 채 자신의 모습을 추스르고 변명을 일삼는다.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하고, '수정궁'으로 상징되는 유토피아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 부분을 읽는 어느 독자라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나도 공감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화자를 신뢰할 수 있다는 전제가 마련될 때에 한해서다), 그 누구보다도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사람은 내겐 화자 자신인 것처럼 보였고, 자신만의 지하 세계를 수정궁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화자 자신인 것처럼 느껴졌다. 자고로 비판이 힘을 얻기 위해선 비판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적당한 자기 검열은 성찰의 좋은 재료이나 지나치면 자기 의심, 비하, 포기, 낙심, 절망으로의 급행 티켓이 되기 마련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소외시켜 관념적인 자아 안에 영원히 갇힌 신세로 전락해 버린, 치우친 공간에서 평형을 이루고 있는 왕이 아니었을까.
놀랍게도 열등감, 자기 비하, 자존감 결여, 과장된 허세 등 일련의 자기 파괴 과정의 끝에서 그는 쾌락을 발견한다.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에서 그는 쾌락을 느낀다. 결핍을 느낄 때 인간의 첫 번째 반응은 그것을 채우려는 노력이다. 그 거듭된 노력이 실패로 이어지면 그다음 반응으로써 포기를 선택하게 된다. 이 포기도 거듭되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불신하는 단계를 넘어서게 되고 얼굴엔 절망이 아닌 조용한 미소가 지어지게 되는데, 이때의 미소는 광기를 머금게 되는 법이다. 아마도 작품 속 화자 역시 이런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 탓에 열등감의 심연에서 쾌락을 발견한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진정으로 지하 세계 시민이었고 왕이었던 것이다.
그의 지식과 사상이 글로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현실과의 괴리를 피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은 내가 1부에서 그가 쓴 독백들을, 비록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창녀인 리자로부터 그가 그녀 앞에서 했던 설교가 책 읽는 것 같았다는 평을 듣게 된다. 그는 학창 시절 자기를 소외시킨 친구들에게 복수하고자 학업에 열심이었던 전력도 가지고 있다. 그가 책을 찾고 공부했던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가 아는 지식은 이론에 불과했다. 도저히 힘이 있으래야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자의 열변을 신뢰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열변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각할 거리를 찾아내고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2부에서 소개되는 에피소드는 3개다. 첫 에피소드는 장교와 마주 보고 지나칠 때 먼저 피하지 않고 어깨를 과감하게 부딪혀 자존감의 회복을 도모하고자 애쓰는 웃픈 장면들인데, 여기에서 알 수 있는 화자의 캐릭터는 찌질하다는 표현밖에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열등감에 절어 있다. 놀랍고, 한편으론 가슴 아픈 것은 화자 스스로가 맨 정신으로 장교와 마주칠 땐 자신이 먼저 피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제정신으로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는 비극의 주인공이 바로 이 화자인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초대받지 못한, 학창 시절 친구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 스스로를 초대하여 자발적으로 찾아간 장면들이다. 친구들은 이미 학창 시절 화자를 소외시키고 모욕했던 작자들이었다. 이 모임에 가면 그 과거가 재현 및 반복될 것임은 2 + 2 = 4처럼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모임에 찾아간다. 1부에서 지적한 인간의 비합리성과 모순됨을 그는 스스로의 행동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화자의 캐릭터는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찌질하다는 표현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는 아주 작은 일에 자존심을 부려 체면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또한 그런 시시콜콜한 일들로부터 우위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요상한 지배욕까지 선보이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 요상한 지배욕은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창녀 리자와의 만남에서 화자는 마치 자신이 깨우친 지식인이자 선도하는 계몽가 혹은 말로 사람 마음을 휘어잡고 교정하는 카리스마 있는 설교자로 분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리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화자가 연기한 말과 행동이 아닌, 화자가 미처 숨기지 못한 말과 행동이었다. 그녀만큼 그 역시 인생의 바닥을 헤매고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그녀의 모성애와 동정심과 측은지심 및 동병상련의 마음을 자극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한 가지 더 발견할 수 있는 화자의 모습은, 화자는 사랑받아 보지도 사랑을 베풀어 보지도 못한 사람이라는 것인데, 타자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되고 단절되었던 과거의 상처 속에서 현재를 살아내고 있으며, 지하 세계에 숨어서 그 상처를 보이지 않게 하여 남도 속이고 자기도 속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가 바로 화자 자신이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지배받기보다 지배하는 자의 위치에 서고 싶어 하는 모순된 자아로 이뤄진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 그의 비뚤어진 세계관은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적인 인간관계도로 압축될 수도 있겠다. 이런 세계관을 가진 자에게 구원자 역할을 할 수도 있었던, 어쩌면 그에겐 유일한 기회였던, 리자가 떠나게 되는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에 반하여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를 매개로 구원을 받는 자리로 나아간다. 자기 객관화의 유무에 따른 열매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작품 속 화자를 비판적으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골랴드낀에서 느끼지 못했던 측은지심을 그로부터 느꼈다. 인간 본성을 더 진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로부터 나의 내면에 숨겨진 은밀한 자아를 발견해서일까. 나 역시 '나'라는 지하에 스스로를 가두고 비뚤어진 상태에서 평화나 정의를 운운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나 역시 찌질할 뿐 아니라 요상한 지배욕에 가득 찬 채, 인간이 비합리적이고 모순된다는 명제를 방패 삼아 그 아래에서 마치 나는 비합리적이고 모순된 행동을 해도 되는 특권을 얻은 것처럼 종종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편안한 곳이, 내가 합리적이고 모순이 없다고 여기는 공간이 지상인지, 혹시 지하는 아닐지 다시 점검할 필요를 느낀다.
*도스토옙스키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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