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문학의 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땐 책을 집어든다. 그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책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책은 답이 아닌 답을 이끄는 실마리, 혹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그것도 무한으로.
어쩌다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도 책 자체라기보다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위치한 나의 생각과 마음과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책을 매일 읽어도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순간들.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예기치 못한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전율하게 되고 살아 있어서, 혹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마음 깊이 감동이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 책을 드는 이유도 그런 기대 때문일 것이다.
독서의 맛을 모를 땐 나도 서점에 가서 자기 계발서를 들추곤 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장 먹기 쉽고 먹기 편한 답이 잘 정제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가끔 어떤 문장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면 그 책을 집어먹기라도 하듯 구입해서 탐독했다. 지금 돌이켜 볼 때 내 인생에서 가장 다행이라 여기는 결정 중 하나는 무한이 될 수도 있는 자기 계발서의 고리에서 서너 권 정도 읽고 탈출한 것이다. 정제된 문장은 쉽게 답이 되곤 하지만 그 답은 나의 머리만 자극할 뿐 소화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삶의 콘텍스트가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고 사유의 깊이나 폭이 다른 상황이 전혀 적용되지 않은, 탐스럽게 생겼지만 내 것은 아닌 음식 같은 것이었다는 게 나의 탈출 이유다.
그래서일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땐 소설을 집어든다. 그저 어떤 한 사람의 세상 속으로 가만히 젖어들어간다. 그러면서 나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게 된다. 타자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의 접점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며 그동안 눈이 가려져 하지 못했던 반성과 성찰을 비로소 하게 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힘이다. 문학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