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독서를 하면서 얻는 한 가지 소중한 진리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것이다. 내겐 언제나 읽은 책 보다 읽을 책이 많다. 때로는 그 앞에 서서 어떻게든 빠른 시간 안에 저 벽돌들을 격파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독서가 일상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에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산적한 책들 앞에서 그 책들의 가치 때문이 아닌 내가 그 책들을 빨리 읽어내지 못한다는 무기력함 때문에 주눅 들었다. 나는 여전히 책을 나를 더 높은 곳으로, 나를 더 앞선 곳으로 데려다줄 지식의 소스로만 여겼던 것이다.
독서는 더 나은 나를 만든다는 문장에 나는 전적인 동의를 하면서도 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비교 대상으로 압축될 수 있는데, 독서를 하기 전과 후의 비교 대상이 타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요컨대 독서를 통해 과거의 나에 비해 나아진다는 것이지 결코 타자보다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낫다'라는 의미에 대해서도 역시 주의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독서를 통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과거에는 존경했던 사람들을 우습게 보기 시작하는 사람도 알고, 교만해져서 더 이상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보았다. 그들은 스스로 책의 효용을 다 맛보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나를 앞서 가게하고 높이 세우는 수단으로만 책을 대하는 자세를 보았던 것이다.
부족해서 책을 읽기 시작하지만 교만해져서 책을 그만 읽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겸손을 생각했다.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책이 아닌, 인생을 함께 하는 동지로서의 책.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책을 읽기 바라는 마음의 저변에는 아마도 교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지식을 뇌에 업로드하는 모습이 그 끝판왕의 자리를 꿰차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책이 그 정도의 가치만을 지닌다고 생각하면 슬프다. 그 사상을 따라가면 책은 소비되어 사라질 그 무엇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독서는 수단이 아닌 과정이라고 믿는다. 빨리 읽어 해치우는 게 아닌, 천천히 음미하며 일상에 녹아들어 나와 함께 하는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라고 믿는다.
오늘도 책장 앞에서 그런 충동을 느꼈다. 아직도 읽지 못한 채 뻣뻣하게 서 있는 책들을 보고 있자니, 일주일에 한두 권밖에 읽어나가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함이 싫었다. 하지만 다시금 나의 믿음을 떠올리며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 다시 한번, 책은 수단이 아닌 과정이다.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관건이다. 느리지만 성실히 지속되는 독서 습관은 낙숫물이 되어 바위를 뚫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위는 바로 '나'일 것이고 '나'여야 한다. 독서로 뚫리고 깨우치며 더 낮은 모습으로 겸손하고 경건하게 길들여져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