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함이 아닌 추위를 느꼈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열대야의 그늘 속에서 투덜대지 않았던가. 어제부터 외투를 꺼내 입었다. 비까지 내리니 벌써 겨울인가 싶을 정도다. 섭씨로 10도 정도 내려갔을 뿐인데 세상이 바뀐 것만 같다. 창문을 닫고 두꺼운 이불을 꺼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추워지는 길목을 사랑한다. 차가운 대기를 느끼고 있자니 괜스레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책을 읽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자꾸만 허공을 응시한 채 한동안 멍하니 있게 된다. 무엇 하나 이룬 게 없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오후 한때를 보냈다. 그런데 그리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익숙한 기분이 들고, 이제는 그런 질문조차 이 시절에나 할 수 있는 특권처럼 여겨진다. 여전히 미래를 생각하면 불투명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렇게 치열했던 여름도 번개처럼 사라지고 어느덧 추위가 찾아오듯, 계절은 바뀌고 또 나는 어떻게든 살아내게 되리라는 것을.
무엇을 이룰 것인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누구와 함께 그 길을 걸어갈 것인가, 그 도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이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부디 마음과 생각에 평안이 깃들기를. 부디 부끄러운 선택을 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도 그러기를 내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