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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Oct 04. 2024

반복과 영원

반복과 영원


쓰다가 읽다가 졸다가 멍 때리다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면 함께 먹고 이야기하고 깔깔대며 보드게임도 하고 산책을 나선다. 소리 내어 성경을 함께 읽은 후 아들은 잠자리에 들고 아내와 나는 한두 시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하루 중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오롯이 읽고 쓰고 사유하는 시간. 나의 저서는 모두 이 시간으로부터 잉태되었다. 


참 괜찮은 삶이라는 생각, 이 정도면 행복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내가 꿈꿔온 삶 중에 이런 삶은 없었다. 오로지 더 위로 더 앞으로 더 빨리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것만이 행복을 보장해 주리라 믿었다. 어리석은 믿음이었다. 어느덧 쉰에 가까운 나이에 다다르니 행복은, 그리고 깊은 만족은 위가 아닌 아래에, 앞이 아닌 옆에, 빨리가 아닌 느리게 사는 삶, 어쩌면 투박하고 조금은 불편한 삶 가운데 머문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파랑새는 언제나 곁에 있는 법이다. 내 눈에 허물이 벗겨지기 전까진 보이지 않을 뿐.


폴짝폴짝 하루 일 하고 하루 쉬는 한 주를 마무리한다. 주말이다. 나는 또 쓰다가 읽다가 졸다가 멍 때리다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면 함께 먹고 이야기하고 깔깔대며 보드게임도 하고 산책을 나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밤이면 다시 한 자리에 모여 소리 내어 성경을 읽은 후 아들은 잠자리에 들고 아내와 나는 한두 시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아, 이 반복이라니. 영원을 갈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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