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웅 Nov 24. 2024

초월자의 모습

초월자의 모습


어떤 사상이나 이념 혹은 가치체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을 초월한 자의 모습은 어떨까? 누가 봐도 초월자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게 보일까? 나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초월자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울고 웃고 장난도 치고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과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초월을 경험한 이후에 다시 얻은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제자리인 것 같지만 굴곡진 먼 길을 거치고 마침내 돌아온 자의 모습이 바로 초월자의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일상의 소중함은 일상을 잃어본 자만이 아는 특권이라고 믿는 나는 초월자의 모습을 해석할 때에도 이 관점을 이용한다. 그는 한 때 일상에서 염증을 느끼고 탈출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며 결국엔 많은 상실을 감내하면서 떠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똑같은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굳이 식상한 예를 떠올리자면 파랑새가 멀리 있지 않고 집 앞마당에 있는 걸 그제야 발견한 경우랄까. 자신이 거하고 누리고 있던 그 식상한 일상이 결코 식상하거나 지루한 게 아니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소중한 시공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자가 바로 초월자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우리 주위엔 ‘대충 초월자’ 혹은 ‘초월자인 척하는 인간들’이 득실대는 것 같다.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 허영에 가득 차 남들을 얕잡아보고 우월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행복이나 만족은 늘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일희일비할 수 있는 작디작은 차이일 뿐인 사람들. 익명성에 의존하여 문화라는 허울 아래 언제나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다니며 말초적인 쾌락을 일용할 양식으로 여기는 사람들. 그들은 아마도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진정한 행복자가 아니라 언제나 눈알이 빠르게 굴러가는, 소위 눈치학 백 단에 속한 저속하고 비열한 부류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러나 남들은 그 사실을 모르도록 해야 하므로 그들은 쉴 새 없이 눈치 보며 살아가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이런 이들이 우리 사회에 은근히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실망에 실망을 더한 적이 많았다.


눈치. 그렇다. 나는 초월자와 초월자인 척하는 자의 중요한 차이는 남의 시선에 좌우되는 삶을 사는지에 있다고 본다. 물론 자기만 아는 독불장군을 초월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면서도 다수의 의견이나 문화에 휩쓸려 다니지 않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자기만의 견고한 답을 가지고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 독불장군과 거의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지만 자기만의 삶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멋진 사람.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이 강하여 힘이 느껴지지만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어 조용한 카리스마가 알고 보면 느껴지는 사람.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자가 초월자가 아닐까.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그 어떤 사람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내면세계를 가지고 본인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 살아가야 할 이유 등을 잘 알고 묵묵히 그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이 깊은 사람, 여백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깊고 풍성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오블완_티스토리챌린지_18


매거진의 이전글 순응과 순종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