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KOMOREBI: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이 영화의 호평을 이미 여러 번 들었고, 평범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찬사가 연이어졌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일상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나도 그중 하나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르다가 이 영화가 보였을 때 플레이 버튼을 누른 건 나로선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
의외였다고 해야 할까. 내겐 이 영화가 일상의 찬사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게 보인 건 아름다움보다는 외로움이 컸고, 아름다움도 외로움도 아닌 그 둘을 초월한 그 무엇이었다. 외로움을 겪어내지 못한 아름다움은 공허하며,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한 외로움은 처절하기 마련인데, 내겐 이 영화의 메시지가 이 둘을 가뿐히 넘어선 것으로 보였다. 창백하고도 찬란할 만큼. 순박하고도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주인공이 만족하는 삶은 화장실 청소가 직업인 삶도 아니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삶도 아니며, 헌책방에서 즉흥적으로 고른 책도 읽고 카세트테이프로 음악도 듣고 구식 필름 카메라로 사진도 찍는 소소한 취미를 누리는 삶도 아니다. 만약 그에게서 그런 삶을 빼앗는다 해도 그는 다시 자신만의 고유한 일상을 찾아내고 유지하리라고 생각한다. 즉 그의 삶이 아름답게 보였던 건 그 삶이 단순히 소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무언가 초월한 것처럼 보였던 그의 삶은 그의 표면적인 혹은 가시적인 삶의 패턴이 아닌 그의 내면세계였던 것이다. 나는 주인공에게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낸 낮은 자의 눈을 보았고 손길을 느꼈다.
어쩌면 내가 주인공에게 너무 깊이 몰입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인공을 타자로 바라볼 땐 그가 살아가는 소박한 일상이 단순하게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되었을 땐 그 일상은 핑크빛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내가 살아가는 삶과도, 나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과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주인공의 개별적인 일상이 보편적인 인간의 일상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삶은 반복되고 무의미해 보이다가도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마다 긴 잠에서 깨어난 듯 내면의 깊은 눈이 열리며 비로소 자신의 삶을 끌어안게 된다. 살아가다가 가끔 경험하게 되는 예기치 못한 기쁨이다. 이 영화를 보고 마음에 감동이 오는 이유도 바로 이 기쁨이 그의 얼굴 표정과 몸짓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이 반복된 삶에도 얼굴에 작은 미소를 잃지 않게 해 주는 것은 화장실 청소라는 직업이 아니라는 점이 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그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일이 아닌 자연이었다. 하루와 하루 사이에 삽입된 여러 흑백 사진들로 구성된 대부분의 장면들은 자연의 모습이었다.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늘 새로운 모습을 띠는 자연. 이 자연의 아름다움 혹은 생명력은 힘든 일도 반복된 일도 누추하게 보일 수 있는 일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묵묵히 감당하게 해 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일상의 동력은 직업이 아닌 직업 외 일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직업만으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논하는 엘리트 층에 속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 역시 한때 그 가운데 있었다. 직업 이외의 일상은 직업을 위해 포기하고 희생해야만 하는 것들에 불과했다. 잘못된 각인이었다. 나아가 결핍과 실패라는 과정 없이 성공과 출세를 거머쥔 자들의 비극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영화 속 주인공도 실패한 엘리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평생 화장실 청소만 한 사람의 눈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눈엔 산전수전을 다 겪고 닳고 낮아진 그의 현재가 보였고, 그런 그의 현재 모습 때문에 그의 과거를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초월은 한 우물 안에서만 존재할 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길을 잃고 이리저리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에 온 자만이, 일상을 처절하게 잃어보고 다시 찾아 회복한 사람만이 아는 그 무엇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하게 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하루하루는 똑같지만 다르다. 그림자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나는 나뭇잎이 햇살에 비쳐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이 영화의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수많은 이름들이 올라가고 나면 아래 내가 캡처한 사진이 나온다. 거기에 적힌 글귀는 다음과 같다.
"KOMOREBI"
is the Japanese word for the shimmering of light and shadows that is created by leaves swaying in the wind. It only exists once, at that moment.
나는 이 영화의 제목으로 ‘퍼펙트 데이즈‘가 아니라 ‘Komorebi'라고 해야 더 정확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이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며 자주 찍던 사진도 모두 Komorebi였다. 그의 반복된 하루도, 나의 반복된 하루도, 그리고 우리 모두의 하루도 Komorebi가 아닐까 싶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도가 사상의 가르침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은 저 묵직한 메시지.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은, 나의 일상은 매일 새롭고 아름답다. 아, 깊은 위로가 된다.
참고로, 아내와 아들과 언젠가 함께 방문한 대전 미술관에서 보았던 연상록 작가의 그림도 Komorebi였다!
#김영웅의영화와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