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힘

보이지 않는 모습

by 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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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은 잔상이 길다. 누군가를 기억할 때면 그 사람이 했던 말이나 글이 떠오를 때가 있는가 하면, 그런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릴 수 있도록 표현된 것들이 아닌, 표현되지 않은 것들, 이를테면 얼굴 표정이나 몸짓, 혹은 뒤통수나 옆모습과 같은, 어쩌면 아주 평범한 것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에게는 표현된 것보단 표현되지 않은 것들이 기억 속에 잔상을 오래 남기는 것 같다. 채워진 공간이 아닌 채워지지 않은 공간, 즉 그 사람의 여백이 나로 하여금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옛 생각에 잠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래된 그 사람의 습관, 경계하지 않을 때 비로소 보이는 그 사람의 정돈되지 않은 모습. 한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은 그것들을 함께 한 사람에게는 각별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함께 함의 여파는 언제나 헤어질 때, 그래서 남겨질 때 여실히 드러나는 법이다. 남은 자는 살아갈 날들 동안 기억할 것이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불쑥 잦아드는 떠난 사람의 여백에, 그 일상에 눈물을 훔칠 일이 많을 것이다.


나는 어떤 여백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의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주위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 보인 모습보다는 보이지 않은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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