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기억

고향

by 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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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정든 기억


이국에 있거나 옛 음악이 흘러나오면 문득 그리움이 밀려오곤 한다. 향수를 느낄 때다. 향수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국에서 느끼는 향수는 낯선 곳에서 집이나 고향 같은 익숙한 공간을 떠올리며 느끼는 그리움이다. 영어로는 Homesickness라고 하며, 보통 외로움, 불안,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이 동반된다. 반면, 옛 음악이 흘러나올 때 느끼는 향수는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회상적 그리움이다. 영어로는 Nostalgia라고 하며,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주로 아련함 혹은 애틋함이 동반된다. 이 두 가지 향수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나는 언젠가부터 이 둘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돌아갈 고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돌아갈 고향이 사라진 자에게 Homesickness는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그리움이자 재현될 수 없는 향수다. 이들에게 Homesickness는 Nostalgia와 같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은 과거의 기억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게도 향수는 더 이상 외로움, 불안, 우울 등을 불러오지 않는다. 그런 감정들도 향수의 재현 가능성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졌다. 대신 내게 향수는 언제나 아련함이나 애틋함을 동반하는,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잡으려고 하는 사무친 그리움이다. 나는 이를 '정든 기억'이라 부른다. 고향의 새로운 정의라 해도 되겠다. 물론 이때의 고향은 돌아갈 수 없는, 혹은 사라져 버린 고향이다.


나의 사라져 버린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 부산이다. 부산은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부산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학을 포항으로 가게 되면서 부산을 떠났다. 1996년 3월의 일이다. 태어나 처음 부산을 떠난 내게 그 당시 오지였던 포항은 생경한 곳이었다. 학교 주위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가는 의례히 유흥가로써 음식점과 주점이 즐비하다고 알던 내겐 충격이었다. 80년대 골목시장 안의 구멍가게처럼 식당과 주점이 몇 군데 있긴 했는데 그마저도 학교에서는 걸어서 40분, 버스를 타면 10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모든 게 낯설었던 나는 해질 무렵이면 거의 매일 집을 떠올렸다. 단순히 가족이 보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녔던 곳, 부산에 있던 집과 집 주위의 거리와 건물들을 하나씩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다. 나는 외로웠고 불안했으며 우울하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Homesickness였던 것 같다.


방학 때면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쓰던 방, 내가 쓰던 책걸상, 내가 쓰던 스탠드 등 모든 게 그대로인 공간은 내게 깊은 만족감을 주었다. 그때 생각했다.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고향이구나, 이런 것이 있어야 사람은 안정감을 느끼는구나. 그러나 대학원까지 가게 되어 포항 생활이 길어지면서, 특히 아내를 만나고 결혼하게 되면서, 급기야 부모님이 퇴직하시고 부산을 떠나 영천으로 이사하시면서 그 안정감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내게 익숙했던 나만의 공간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부산을 찾는다는 건 부모님을 뵙기 위함이었는데 그 이유마저도 사라져 버리자 나는 자연스레 더 이상 부산을 찾지 않게 되었다.


얼마 전 동생의 재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 내가 알던 부산이 아니었다. 내가 다니던 길도, 내가 늘 보던 건물들도 사라졌거나 개조되어 있었다. 가장 익숙해야 할 장소에서 가장 낯선 기분을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아니 고향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상실 아닌 상실감에 나는 허탈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더욱 내가 알던 옛 고향의 추억들을 떠올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상실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르게 해석한다. 바로 그 순간이 Homesickness가 Nostalgia와 같아지는 시기였다고 말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 느꼈던 허탈함조차도 불안을 조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은 어떤 감동으로 인해 더욱 따스해지고 있었다. 내가 가진 기억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고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까지 생겼다. 부산을 방문했던 그날은 내게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아련한 기억의 한 조각으로 곱게 간직하는 기념일이 되었다.


그날 내 고향 부산에서 '고향 없음'을 체험했다면, 11년을 살았던 머나먼 타국인 미국에서 나는 '고향 있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상실 아닌 상실감도 해소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내의 이사를 돕기 위해 일주일간 방문했던 엘에이 근교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고향을 느꼈던 것이다. 내가 다니던 길, 내가 늘 지나치던 건물들, 심지어 내가 자주 가던 식당, 여전히 나를 알아보시던 식당 아주머니, 이 모두가 그대로였고 내겐 고향으로 느껴졌다. 나는 잃었던 고향을 찾은 것 같은 마음에 적잖은 감동이 되었고, 재현될 수 없을 것만 같던 향수가 재현되는 신기한 체험도 할 수 있었다. 그때 다시 나는 고향을 재정의하게 되었다. 고향은 물리적인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내게 익숙한 것들, 다시 말해 ‘정든 기억’이란 것을. 그리고 그 정든 기억이란 변하지 않는 그 무엇, 이를테면 어떤 장소나 물건, 혹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아가 고향은 공간적 좌표를 가진 객관적 위치가 아니라 익숙한 곳을 떠난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경험과 주관적인 기억이라는 것을.


기억이란 역사적 실재가 아닌 해석의 산물이다. 고향이 기억이라면 고향 역시 해석의 산물이라는 말이 된다. 같은 고향 출신인데도 저마다 고향을 다르게 기억하는 현상도 이로써 설명이 가능하다. 객관적인 실재가 아닌 주관적인 해석이 고향의 속성이라고 할 때 회복되는 것 한 가지는, 내가 미국 방문 때 느꼈던 것처럼, 향수의 재현 가능성이다. 비록 내가 알던 고향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고향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찾아지고 또 반복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낯선 곳이라 할지라도 주먹 한 움큼만큼의 익숙한 것을 느낄 때, 칠흑 같이 어두운 방 안으로 미세한 구멍을 통해 빛 한 줄기가 침투하는 것처럼 우린 고향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그 순간 그리움은 해소되고 향수는 재현된다. Homesickness는 고향의 상실로 인해 Nostalgia와 하나가 되었다가 새로운 고향의 발견으로 인해 다시 분리되어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기쁨을 안겨다 주는 것이다. Nostalgia가 불러일으키는 아련함이 늘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어쩌면 살면서 가끔 마주치는 Homesickness의 예상치 못했던 분리, 그리고 그 분리가 가져오는 뜻밖의 열매, 즉 그리움의 해소와 향수의 재현이 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고향을 묻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살면서 아주 가끔 열리는 시공간의 가느다란 틈을 통해 내 일상으로 침투하는 정든 기억이라고. 그 정든 기억은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되지만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고. 그리고 그 살아있음은 내게 큰 기쁨을 안겨 준다고. 향수는 지금도 재현 가능한 거라고. 그리움은 해소될 수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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