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만든 설문이, 아직도 살아있더라고요

네이버 부스트캠프 AI Tech 1기, 심고 떠났는데 자라고 있었습니다

스크린샷 2026-03-11 오후 9.06.48.png 네이버 부스트캠프 10주년 회고글, 일부분


우연히 발견한 흔적


며칠전, 별 생각 없이 탭을 하나 열었습니다. 부스트캠프 10주년 인사이트 페이지였어요. 가볍게 훑으려던 스크롤이, 어느 순간 멈췄습니다.


'성장 중심 평가 체계'라는 제목 아래, 커뮤니케이션과 협력 경험을 관찰하는 3층위 접근법이 소개되어 있었어요. 피어세션 직후의 Pulse Survey, 주간 자기 회고, 팀프로젝트 피드백 — 이 세 겹의 구조 안에서, 2단계 '주간 자기 회고 설문'의 핵심 질문이 눈에 들어왔죠.

"한 주간 나의 학습과 성장에 가장 도움이 된 동료와 그 이유"


화면을 보면서 잠깐, 시간이 멈추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건 제가 넣은 질문이거든요.



2021년, 업스테이지에 재직하면서 네이버 부스트캠프 AI Tech 1기 운영진을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5년이 지난 지금, 이 질문이 부스트캠프의 공식 평가 체계에 남아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 뿌듯함보다 먼저, 그 시절이 통째로 떠올랐어요. 교육에서의 결과는 Output이 아니라 Outcome으로 봐야 한다고, 저는 늘 이야기해왔습니다. 끝내주게 좋은 커리큘럼을 만들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건 오해거든요. Input과 Outcome 사이에 '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고, 그 설계 중 하나가 바로 이 질문이었어요.



씨앗은 이미 있었어요


이 질문은 부스트캠프에서 처음 만든 게 아닙니다. 처음 씨앗을 받은 건 AC2에서였어요. 커뮤니티 안에서 구성원들이 서로의 성장에 기여하는 구조, 그 상호작용 자체가 학습이 되는 방식, 그 힌트를 그곳에서 얻었죠. '함께 자라기'라는 말이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걸 봤습니다. 의도적 수련, 피드백, 직관이 순환하는 이터레이션. 그 순환을 통한 잦은 성장의 주기. 이 경험이 저에게 일종의 원형이 됐어요. 그 씨앗을 처음 심은 곳은 데잇걸즈였습니다. 데잇걸즈에서 회고는 특별한 형식이 아니었어요.


매일매일 숨쉬듯이 진행했고,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의 루틴이었죠. 뭔가를 '시킨다'는 느낌이 아니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습관. 그 일상적인 회고의 흐름 안에서, '나의 학습에 도움이 된 동료'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건 자연스러운 확장이었어요. 제가 데잇걸즈에서 추구한 건, 교육이라는 수동적 형태가 아니라 커뮤니티로 기능하는 구조였습니다. 이터레이션, 함께 성장, 회고, 학습전이, 데잇걸즈를 상징하는 이 키워드들은 하나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고, 그 철학의 핵심 장치 중 하나가 바로 '동료의 기여를 인식하는 구조'였죠. 그래서 이 질문의 임팩트를 저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데잇걸즈에서 이 질문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직접 봤으니까요. 이론적 확신이 아니라, 현장에서 검증된 확신이었습니다.



맥락을 구조화하고, 살아있는 질문으로 만든 일


부스트캠프에 합류했을 때, 이미 좋은 설문들이 있었습니다. 운영진들이 만든 것들은 학습자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기여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사이의 맥락을 더 구조화하고 싶었습니다. 개별 설문들이 독립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서, 질문과 응답 그 자체가 유기적인 인터랙션이 되도록. 제가 늘 이야기하는 것처럼, 소프트스킬이라는 단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구성원들이 자연스런 형태로 인터랙션하게 하는 임베딩 시스템, 그걸 설문 안에 심고 싶었죠. 설문에 답하는 행위가 단순한 데이터 제출이 아니라,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을 돌아보고, 동료를 인식하고,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살아있는 행위가 되길 바랐습니다.


측정인 동시에 관찰. 질문인 동시에 메시지. 데이터 수집인 동시에 교육적 개입. 그 핵심 장치로 이 질문을 선택한 거예요. 새로 발명한 게 아니라, 이미 효과를 알고 있는 씨앗을 250명 규모의 새로운 토양에 옮겨 심은 것이었죠. 운영진들과 건강하고 치열한 토론을 했습니다. 데잇걸즈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확신을 가지고 제안할 수 있었고, 다양한 관점이 부딪히고 정제되면서 가장 살아있는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그 과정 자체가 서로 성장하는 깊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원한 건 이거였어요: 한 순간 눈에 띄는 활약을 넘어, 커뮤니티 내에서 긍정적인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는 학습자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응답하는 행위 자체가, 함께 학습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개개인의 기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커뮤니티에 소통하는 장치이길 원했죠.



질문 하나가 만들어낸 풍경


데잇걸즈에서 이미 봤던 효과들이 부스트캠프에서도 나타났습니다. 규모가 커졌을 뿐, 작동 원리는 같았어요. '나에게 도움이 된 동료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순간, 학습자는 먼저 '이번 주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영향을 줬는가', '왜 그것이 도움이 됐는가'로 이어지죠. 매주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학습자는 자신의 학습을 자연스럽게 대상화하게 돼요. 제가 전에 쓴 것처럼 — 메타인지가 생기면서 더 큰 변화를 주도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눈에 띄는 변화도 있었어요. 매주 누적되는 응답은 커뮤니티의 보이지 않던 기여를 가시화했습니다. 순위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많은 동료들이 '이 사람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다'고 쓰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누군가를 칭찬하는 그 감사와 표현이 점차 퍼지기 시작했어요.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이게 제가 말하는 '친절한 가르침'이 아닌 방식의 교육이었어요. 이른 시점에 적당히 거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인지적 전환을 할 때,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이뤄지는 공부가 아니라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적극적 학습'으로 전환되거든요. 250명의 인원에서 이탈율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었고, 모두가 안전한 심리적 토대 위에서 수료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보이지 않는 설계들이 겹겹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사람'으로 지목받는 경험은, 힘든 순간에 떠나지 않게 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앵커니까요.



씨앗의 힘


AC2에서 받은 씨앗을 데잇걸즈에서 심었고, 데잇걸즈에서 자란 것을 부스트캠프에 옮겨 심었습니다. 옮겨 심을 때마다 토양이 달랐고, 규모가 달랐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달랐어요. 하지만 씨앗의 본질은 같았죠. 매번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든 게 아닙니다. 이미 경험한 것에서 출발해서, 맥락에 맞게 적응시키고, 더 큰 규모에서 작동하게 만든 거예요. 돌이켜보면 이게 제가 하는 일의 본질인 것 같아요. 구성원들이 학습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걸 돌파하기 위해선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 현상과 본질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일. 그리고 그 접근을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라, 한 줄의 질문 같은 미니멀한 형태에 담는 일이죠. 주 1회, 단 하나의 질문이라는 형태도 데잇걸즈에서 이미 검증된 것이었습니다.


매일의 설문은 피로감이 높고, 월 1회는 망각할 수 있지만, 주 단위는 경험이 충분히 축적되면서도 기억이 선명한 딱 그 시점이에요. 임팩트있는 질문이었기에 깊이 있는 성찰이 가능했습니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득한 선명한 현장감에 기반한 것이었죠.


2026년, 부스트캠프의 10주년 페이지에서 이 질문을 다시 만났을 때, 제가 느낀 건 '제가 대단했다'가 아니었습니다. '씨앗이 살아있었다'는 안도감이었어요. 그리고 그 씨앗을 처음 알아보게 해준 AC2와, 숨쉬듯 회고하는 일상을 함께 만들어간 데잇걸즈에서의 경험에 대한 감사함이었죠.


좋은 설계는 설계자가 떠난 후에도 작동합니다. 좋은 씨앗은 다른 토양에서도 자라요. 교육을 설계하는 사람들에게,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경험한 것 중에, 씨앗이 될 수 있는 게 있나요? 그 씨앗을 다른 토양에 옮겨 심어본 적 있나요? 커리큘럼과 콘텐츠에 쏟는 에너지만큼, 한 줄의 질문에 공을 들여본 적 있나요? 때로는 정교한 시스템보다, 이미 검증된 질문 하나가 더 큰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이 글은 2021년 업스테이지 재직 중, 네이버 부스트캠프 AI Tech 1기 운영진으로서의 경험을 회고한 것입니다. 이 질문의 씨앗을 준 AC2와 데잇걸즈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그 시기를 함께한 네이버 부스트캠프의 운영진들과 캠퍼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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