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싫은 것
J에게
이름만 보아도 흠칫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가장 흔한 성씨에 드물지 않은 이름인데도 심장이 불안으로 요동친다. 요 몇 년 동안 내 삶에 얼씬 않던 날카로운 것이 쑥 들이밀어진 기분이다. 그것이 나를 더 이상 찌를 수 없다고 몇 번씩 되뇌어 보아도 소용이 없다. 열 살짜리가 많은 걸 기억하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문자에 답한 것을 후회한다. 좀 더 이야기해도 됐을 텐데. 너 때문에 다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다고, 이 몇 년을 모른 체하다 이제 와서 뭐하자는 거냐고 따져라도 볼 걸. 그러나 나만 괴로워지는 생각이다. 난 걔에게 너무도 쉽게 면죄부를 주었고 그게 나의 최선이었어. 내 유일한 과제는 그때의 나를 자주 안아주는 것뿐이다. 그 애에 대한 미운 마음은 기억이 바래며 꽤 희미해졌다. 남은 것은 나에 대한 안쓰러움, 좋은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래, 그게 궁금하면서도 마주하긴 싫었어. 알고 보니 너무 잘 살고 있을까 봐. 내 행복이랑 견줄만한 행복을 누리고 있을까 봐. 무얼 저지른 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 내가 여전히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다는 마음.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해 고인 것들이 오늘처럼 가슴께까지 차오를 때면 너에게 전화를 걸어 고래고래 악을 쓰고 싶어. 하지만 그걸로 나아질까? 열아홉이 된 내가 열아홉의 너에게 악을 쓴다고 그때의 너와 나는 사라질까.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반복하다 보면 결국 속엔 서러워하는 어린이만 남는다. 누군가는 기억도 안 날 시절의 일을 꼴 사납게 붙잡고 있다고 할 수도,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아무래도 상관없다. 화장실에 갇혀 울고 있는 그 애를 꺼내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까.
화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할 테다. 그리곤 화장실 작은 창문 아래의 발판을 딛게 해 눈높이를 맞출 거야. 양팔을 벌려 나를 한 아름 붙여주자. 마음이 더 이상 산산조각이 나지 않게, 마구 부서져내리는 조각들을 끌어안자. 우리는 엉엉 울겠지. 아님 언니는 누구냐고 코를 찡그릴까. 그럼 나는 네 잘못이 아니야, 이 말만 반복하다가.
수용성 불안
네모반듯한 두부 한 모짜리 크기. 명치께에 걸린 그것을 없애려면 한참을 물로 녹여내야 해. 진한 비눗물이 뽀그럭대며 나온다. 눈으로-코로-마지막으로 입을 거쳐 더러운 것들을 씻어낸다. 몹시 따가운 것을 토해낸 내 얼굴은 퉁퉁 불고, 내 비눗물을 양손 가득 담아낸 당신은 몹시 아파 보인다. 미안해,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아니야, 네가 행복해지길 바래.’라고 말해주는 당신에게 미안함과 고마움 중 무엇이 더 큰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나이쯤 먹으면 내 불안은 스스로 토하고 멀끔히 정리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여전히 소중한 사람 손에 뱉어버리는 이유는 뭘까. 그간 얹힌 것이 뻥 빠져나간 자리엔 예쁜 것들이 찾아온다. 상쾌함, 안도감, 내일은 달라지겠다는 다짐, 그리고 맥락 없는 꿈조각들. 내가 단단히 뭉쳐오던 불안에 비해 턱 없이 적고 연한 것들. 제 풀에 녹아버리기도 한다. 솔직히 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좋게 살고자 하면 좋은 것들이 올 줄 알았지, 이렇게 따가운 것들이 나오는 줄은 정말로 몰랐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는 무지에서 오는 불안은 정말로 유독했어. 그것들은 항상 해오던 것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던 모든 것을 오염시킨다. 수챗구멍에 꽉 틀어막힌 터럭 마냥 숨 쉬는 것조차 내 할 일이 아닌 것처럼 만든다. ‘내가 원한다’라는 감각이 의심스러워지고, 꿈, 내일, 다짐과 같은 예쁜 것들이 나랑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유독성 물질을 토해내는 방법은 알아서, 그래서 여태 숨 쉬고 살았다. 그렇게 막힌 들숨을 틔우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예쁜 걸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