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유럽 배낭여행의 추억 중 적어도 3분의 1은 길을 헤맨 일이다. 가이드북, 관광 안내소에서 받은 무료 지도, 어딘가에 그려진 약도 등을 보며 낯설기만 한 유럽의 거리를 참 많이도 걸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리’라면 치를 떨던 나는 동서남북을 구별하는 것조차 어려웠기에 무조건 길 잘 찾는 친구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친구가 힘들까 앞장 서면 반대로 가기 일쑤였다. 자신감에 차 ‘이쪽이 확실하다’고 우겨도 봤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그래도 헤매는 건 전혀 소용 없는 일은 아니었다. 잘못 든 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풍경이 ‘인생샷’의 배경이 되기도 했고, 단번에 쉽게 찾아간 장소보다는 어렵게 돌아돌아 간 장소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종이 지도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여행의 방식 자체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현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관광 안내소에 들러 무료 지도를 받는 것이었다. 직원에게 내가 예약한 숙소가 있는 동네까지 가는 방법을 안내받고 나서는 그가 평소에 즐겨 찾는 장소들을 꼭 물었다. 그뿐 아니라 여행 중 만난 사람마다 가볼만한 곳을 추천 받았다. 가이드북과 현지 신문에서 본 장소까지 지도 위에 표시해 나만의 보물 지도를 만들었다. 여행을 마친 후에는 그렇게 완성된 지도를 기념품으로 간직하다가 같은 여행지에 갈 친구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미리 다운 받기만 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구글맵이 있는 요즘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반대로 생각하면 외국어가 서툴고 숫기도 없는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말을 걸 수 있었던 건 여행자라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권리였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마음에 쏙 드는 호스텔을 찾았다. 이국적이고 깔끔한 인테리어와 편리한 시설에 착한 가격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숙소였다. 늘 그랬듯 짐을 풀고 나서 프론트 직원에게 단골집 몇 곳을 물었다. 그는 기꺼이 지도 위에 자주 가는 식당, 서점, 문구점 등을 손수 표시해주었다. 그의 말만 믿고 찾아간 식당에서는 수십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할아버지 셰프의 관록 있는 대구와 문어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리스본을 떠올리면 트램과 에그타르트 다음으로 그 식당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한편, 목적지를 찾느라 지도를 들고 한참을 서 있으면 먼저 다가와 도움을 주는 친절한 현지인도 많았다. 가끔이지만 찾는 곳까지 앞장서서 데려다주는 한없이 친절한 이도 있었다. 그런 여행지는 좋은 인상을 남기며 언제든 한 번 더 방문하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도 헤매긴 마찬가진데, 그때보다 이런 일들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을 받는 건 왜일까. 여행지에서 구글맵을 켤 때면 종이 지도를 떠올리며 그리워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