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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pr 23. 2019

최고의 숙소를 찾아서

감옥에서의 하룻밤

점점 다방면으로 욕심이 많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데, 덜어내진 못하고 쌓기만 한다. 즉, 가난한 여행자의 제1 덕목인 ‘가뿐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LCC와 이코노미석의 좁은 좌석 간격을, 15~23kg의 턱없이 부족한 수하물을, 3성급 호텔 스탠더드 룸의 평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시설을 견디기가 힘겨워지는 것이다. ‘이 정도는 누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여행을 가로막고, 여행을 떠나기로 어렵게 마음을 먹고 나서도 이것저것을 저울질하느라 하루에도 수백번 씩 검색을 하며 질척질척 댄다.

하지만 가난한 여행자에겐 어차피 선택권이 별로 없다. ‘가성비 좋은’ 무언가는 거의 환상에 가깝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만한 예산엔 그만한 보상이 따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선 타협이 필수다. 그나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요소에서 아낀 만큼 포기할 수 없는 요소에 투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숙소가 후자에 해당한다. LCC를 타고, 가벼운 배낭을 메고 떠날지언정 허름하기만 한 방에서 몇 날 며칠을 묵는 일은 용납할 수가 없다. 

첫 유럽 (배낭 )여행에서도 그랬다. 우리 일행 4명은 곧 죽어도 호스텔이 아닌 호텔을 택하기로 합의했다. 대학생 4인이 함께 머물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호텔 방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우리의 고집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결국 준비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암스테르담 7개 도시 어딘가에 있는 호텔에 우리의 거처를 마련하고야 말았다. 유럽 배낭 여행이 유럽 호텔 투어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몇만km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실물을 확인하지 않고 예약한 호텔들은 저마다 개성이 두드러졌다. 훈남 직원은 있지만, 엘리베이터는 없는 런던 호텔, 지하철역 가까이 있어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지진 난 것처럼 방이 흔들리던 파리 호텔, 캐리어를 끄는 게 100배는 힘들어지는 돌길을 돌고 돌아가야 하는 베네치아 호텔 등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덕분에 우리는 일정 내내 ‘다음 호텔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기대를 하며 우리 나름의 별점을 메기는 데 맛 들였다. 그중 마지막 도시인 암스테르담에 있던 호텔은 말 그대로 대미를 장식했다.

로이드 호텔은 처음부터 우리를 당황케 했다. 4인용 방이 없어 2인용 방 두 개를 예약했는데, 예약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분명 예약을 했으니 어떻게든 해결하면 될 일이었지만, 직원의 태도가 황당했다. 제대로 확인을 해보지도 않고 우리의 잘못인 듯 얘기하는 것이었다. 마치 기숙사생들을 꾸짖는 사감처럼 단호하고 강경한 모습에 우리는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다. 어찌어찌 예약이 확인되어 방을 배정받은 우리는 방문을 여는 순간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색상을 메인으로 사용해 다소 음침한 분위기의 방 한가운데에 샤워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소품이겠지’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야속하게도 바로 그 샤워기에선 물이 콸콸 쏟아졌다.

알고 보니 로이드 호텔은 감옥・소년원 건물을 개조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그룹 MVRDV를 비롯해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이 리노베이션에 참여해 몰라볼 정도로 변신한 이곳은 세계 최초로 1~5성급 객실이 공존한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우리는 가격만 보고 1~3성급 방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느낌 있는 건물과 인테리어를 보자마자 한껏 기대에 찼는데… 역시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20년 인생 처음으로 개방형 욕실에서 샤워를 한 그날 밤, 친구와 나는 서로가 뻔히 보이면서도 ‘뒤돌아있는 게 확실하냐’며 계속해서 물었다.

비록 한 달 후 카드빚을 갚을 나를 믿고 또 한 번의 여행을 결심하는 보통의 여행자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숙소만큼은 조금 더 돈을 들여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는다. 이때, 중요한 점은 숙소의 만족도가 가격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위치나 방의 구조, 인테리어, 어메니티, 부대 시설 등을 종합했을 때 100% 만족하는 곳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도시에서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숙소밖에 없기에 앞으로도 나는 최적의 숙소를 기꺼이 수고롭게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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