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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May 03. 2019

우연한 인연 1

이탈리아 맛집을 유랑하는 멋진 언니 B

내향적 인간인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이 영 서툴다. 낯을 가리는 탓에 생판 모르는 타인을 만나면 속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표정과 말투가 굳는다. 그런 내가 그나마 자연스럽게 인연을 만드는 때가 있다면 여행을 할 때다. 잠시 주위 환경이 바뀐다고 사람이 확 달라질 리는 없겠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생경한 곳에서는 때때로 마치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에게 말을 걸 용기가 샘솟기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하거나 나보다 더 넉살 좋은 여행 메이트가 먼저 대화를 시작했을 때 참여하는 것뿐이지만.

사실 타지에서의 인연이 한국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어지더라도 한동안 연락을 이어가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연락이 끊기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왠지 완전히 다른 시공간 속에서 행복에 겨울 때 만난 사람이 남기는 여운은 길다. 몇 년이 지나서도 문득문득 생각날 정도로. 이탈리아에서 만난 B 언니가 그렇다. 나와 당시 룸메이트 Y는 방학을 맞아 한 달간 이탈리아를 여행했는데, 로마에서 가는 곳마다 희한하게 B 언니와 자주 마주쳤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은 본능적으로 한국인을 직감한다. 서로가 한국인임을 의식한 우리는 어쩌다 말을 트고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언니는 전문직 종사자로 이직 전 이탈리아로 나 홀로 미식 여행을 떠나왔다고 했다.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돌아다니지만 맛있는 곳에서 다양한 메뉴를 맛보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쉽다고도 덧붙였다. 어쩐지 언니가 만나자고 한 음식점은 시키는 것마다 맛있었다. 학생인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가격이 비싸 내심 마음을 졸였는데, 티가 났던 건지 언니는 쿨하게 계산을 했다. 우리와 여행 기간도, 루트도 비슷했던 언니와 다른 도시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세상에 저런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있구나’ 한참을 감탄했다. 

며칠 뒤 우리는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나온 나폴리 피자집 앞에서 정말로 다시 만났다. 저녁 한 끼 먹으며 몇 시간 대화한 사이일 뿐인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래서 ‘밥정’을 무시 못 한다고 했나. 우리는 다른 테이블에 앉은 외국인들처럼 당당하게 1인 1 피자를 시켜 먹으며 바로 그 ‘나폴리 피자’의 맛에 흠뻑 취했다. 물론 먹을 것 좋아하는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한 얘기의 절반 이상은 서로 못본 새 각자 다녀온 맛집에 관한 것이었고.

언니와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드문드문 연락하고 만났다. 그러는 새 시간은 흘러 흘러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취준생이 되었고, 언니는 결혼을 했다. 그 후에도 아주 가끔 안부를 묻곤 했지만, 이제는 서로의 소식을 SNS로만 확인하고 있다. 한때는 이런 사실이 씁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어렴풋이 깨달았다. 인연은 억지로 잇는다고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인생에는 오가는 인연들이 있다는 걸. 그리고 엄연히 따지면 인연이 완전히 끊어진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인연은 돌이켜볼 때마다 흐뭇한 추억을 쌓은 그때부터 느슨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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