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아 Aug 18. 2024

어떤 죽음 I





몇칠 간격으로 세 번의 죽음을 경험했다.

돌아가신 분의 가족들에게는 애통하고 슬픈 일이겠지만, 간접적으로 그 죽음을 접하는 제 3자들에게,

어떤 죽음은 나에게도 곧 이런 일이 닥치겠구나 하는 슬픈 예감을,

어떤 죽음은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과 동시에,

나에게는 이런 일이 안 생겨서 천만다행이다 하는 비겁한 위안을 느끼게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죽음은...           


그리고 또 어떤 죽음은.....에서 커서가 몇칠 째 깜박거리며 멈춰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활자로 풀어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썼다 지웠다를 수십번 반복해도, 내 머릿속을 떠도는 그 생각을 명징하게 구현할 수가 없다. 바닷물 속에 손을 넣었다가 꺼내어 움켜쥔 손을 폈을 때, 손바닥에 남아있는 뭐라도 하나씩 건져 음과 음으로 연결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닷물 속에서 움켜쥔 맨 손을 폈을 때, 손바닥에 물고기가. 조개 껍데기가, 해초가, 하다못해 모래 알갱이가 들어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그냥 일단 남겨두기로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죽음은...   이다.”          





어떤 죽음 I     


첫 번째는 아빠의 친구의 죽음이었다.

그날은 내 동생의 둘째인 조카의 돌이었다.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되어 지난 일 년간 열심히 먹고,자고,싸며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 제 할 일을 다한 아기와, 저희들도 아직 어린 부모이면서 사람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진땀을 쏟고 있는 동생 부부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인 자리였다. 식당의 작은 방 하나를 예약하고 우리 가족들과 올케의 언니네 가족, 사돈 어르신 내외만 모시고 조촐하지만 정겹게 치른 돌잔치였다. 점점 즐거운 일보다 근심, 걱정이 많아지는 어른들에게 새로 등장한 아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집안의 비타민이자 할머니, 할아버지의 불로장생 명약이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여러가지 험한 일들을 겪으며 혼이 빠져있는 나 때문에 걱정이 마를 날 없는 우리 부모님께 막내 조카는 시기적절할 때 나타나 준 고마운 구세주 같아서 동생 내외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어른들 모두 흐물흐물 녹아내린 듯, 반달눈이 되어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에 감탄하고, 기뻐하고, 아기의 미래를 순도 100프로의 진심을 담아 축복했다. 호기심 많은 조카는 돌잡이 쟁반 위에 가지런히 놓인 연필, 실, 돈, 마이크 등을 골고루 양손 가득 움켜쥐어 지켜보던 어른들을 더 기쁘게 했다.


“그래그래.. 너 하고 싶은거 다 해라...하하하”

아기가 내심 돈을 잡기를 원했던 내 동생과, 의사 청진기를 잡기를 원했던 올케와, 연필을 잡기를 원했던 친할머니와, 건강이 최고라며 실 잡아라~ 하던 외할머니 모두를 만족시키는 아기 솔로몬의 현명한 선택이었다.

“너도 초딩 돼봐라. 인생 곧 피곤해진다.”

아기에게 덕담 한마디 하라는 삼촌의 주문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창 초6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들이 껄렁한 한마디를 던지자 방안이 웃음바다가 되었고, 이런 일이 아니면 평생 가야 얼굴 볼일 별로 없는 사돈 어르신들과 우리 부모님은 “곧 또 한번 보십시다.” 기약없는 인사를 하고, 그렇게 돌잔치는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잠깐 들러서 밑반찬이며 오이지 싸놓은 것을 가져가라는 엄마의 말에 친정집에 잠시 들렀는데 같이 나선 줄 알았던 아빠가 안 보였다. 상갓집에 가셨다고 했다.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선 모양이었다.

“이 더위에 누가 돌아가셨데, 점심엔 돌잔치에 저녁엔 상갓집에... 아빠, 오늘 엄청 피곤하시겠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와 엉망이 된 집안을 청소하고, 엄마가 싸준 음식과 돌잔치를 하고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잔치 음식을 그렇게 먹고도 또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아들 저녁을 해주고 그렇게 동동거리다보니 어느새 주말 하루가 훌쩍 지나 있었다.      


그 죽음을 다시 만난 건 몇 칠 뒤 우연히 보게 된 아빠의 카톡창에서였다.

위암으로 죽은 친구의 장례식장에 앉아서, 설암(舌癌)에 걸려 그 자리에 오지도 못하는 친구에게,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의 장례식장 풍경을 전하는 아빠의 메시지.     


'송파에서 신촌 세브란스. 네비가 가라는 대로 오다보니 옛날 신촌집 앞이더라. 50년도 더 전이겠구나. 그때도 저 놈아 결핵으로 요양원 들어가고 친구들 기함하게 했었지. 참... 뭐 저렇게 끝까지 안 풀리는 인생이 있나 싶더니. 갈 때는 그래도 덜 고생하고 간다 싶었다. 놈인들 하루라도 편했을까. 십년 넘게 반송장으로 누워있는 아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니 틈만 나면 술이었을테고... 그런 놈을 어쩌다 통활해도 살가운 소리 한마디 못해줄 지언정 헛소리만 한다고 윽박이나 질렀으니...     


지난 번, 자랑처럼 엉망인 몸 우리 단톡방에 올렸을 때 이미 위암 3기로 치료가 쉽지 않았었단다. 요즘 위암은 별거 아니라는데. 녀석의 삶은 끝끝내 그 정도 운도 허락이 안되는 그런 거였나 보다. 빈소가 쓸쓸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문상객이 많아 다행이다. 저 놈 가는 길 그리 서글프지만은 않겠네.      


00 엄마한테 요즘 네 근황은 들었다. 널 제일 힘들게 하는게 무엇인지도, 너 그리된 줄도 까맣게 모르고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 소식도. 성치도 않은 노인네에게 네 소식 알려서 좋을 것 없다는 00엄마 말에 나도 동의한다. 어차피 내 맘대로 되는게 별로 없는거 아는 우리, 편하게 생각하자. 움츠리지 말고 편하게 얼굴이나 한번 보자. 목소리가 안나오면 필담이라도 좋고 그저 얼굴만 봐도 좋겠다.     


아.. 좋은 소식. 아들놈 둘째가 오늘 첫돌이었다. 요즘 젊은 아이들 애비 노릇 하는 거 보니 나는 그러지 못했는데 신기하기도,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하더라.

그렇게 새 생명이 자라고 한세대가 떠나는 오늘은...

하루가 참... 길다.'


하필이면 막내 손주의 돌잔치 날, 암으로 죽은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암에 걸려 오지도 못하는 친구에게 보낸 아빠의 메시지 속에서 아빠의 젊은 시절과, 지나간 세월과, 아쉬움과, 쓸쓸함이 보였다. 유난히 길었을 아빠의 그날 하루가 마지막 문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아빠가 메시지를 보낸 분은, 소위 말하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의 면에 있어서 소위 말하는 ’성공한‘ 친구로, 나도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는 분이었다.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에 타고난 달변가로 정치판에서도 승승장구할 줄 알았는데, 두 번의 낙선과 함께 오라는 금뱃지 대신 병마(病魔)가 찾아왔고, 달변가에게는 가혹하게도 그게 하필 설암(舌癌)이어서 말 한마디 마음대로 못하게 되셨다니, 인생 참...’얄궃다‘ 했었다.        


주로 친구의 조부모님이나 집안의 먼 친척 어른들의 상갓집을 갔었다. 이제는 조금씩 친구의 부모님, 혹은 시부모님의 상갓집을 가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상주를 마주보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사드리는 마음이 예전보다 훨씬 무겁다. 친구 부모님, 시부모님의 부재가 슬프다기보단 ’언젠가는 나도 저 자리에 서 있겠지’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내 마음이 이런데, 친구의 부모는커녕, 동년배 친구들의 상갓집에 갈 일이 점점 많아지는 아빠의 마음은 어떨지. 그날 ’생각보다 다행히도 북적거리는‘ 장례식장에서 한때는 함께 술잔을 기울였을 아빠의 한 친구는 이제는 상 맞은 편이 아닌 영정사진 속에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을테고, 또 다른 친구는 핸드폰 너머 암병동 침대에서 누운 채 이 소식을 들었을 테지. 인생 참.. 얄궃네....

어떤 죽음은 언제가는 내게도 닥칠 슬픔을 예고하는 두려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평생이 쉼없이 고단하셨다던 아저씨,

그곳에선 좋아하시는 약주 한잔 하시며 내내 평안하시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전 03화 죽을 뻔해서 다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