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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ug 18. 2024

어떤 죽음 II




두 번째는 남편의 직장 동료의 어린 딸의 죽음이었다.  

평소 남편이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시간에 카톡을 보냈다. 연애 5년, 결혼 20년 도합 25년차 부부에게 예측불허의 카톡 메시지는 두근거리는 설렘을 주기보다는 무슨 일이 생겼나? 두근거리는 불안감을 주기 마련이다. 주로 오전 회의를 주재하거나, 외부 손님 미팅을 하느라 가장 바쁠 시간에 온 남편의 메시지는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듣고 지금 장례식장에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직장 동료의 고3 딸이 오늘 새벽 스스로 생을 저버렸다고 했다. 카톡 메시지를 들여다보며 잠시 이게 무슨 소리지... 멍해졌다. 청소년 자살률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이야기는 신문 기사에나 나오는 남의 얘기였을 뿐, 이렇게 가까이서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더이상 내 아이를 만지고 안아주며 그 체온을 느낄 수 없게 된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그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의 깊이와  아픔에 감히 공감하는 것조차 죄스러워 그냥 가만히 카톡창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왔다. 이윽고 교실에 들어온 아이들이 놀라 선생님 왜 그러세요? 저희들끼리 쳐다보며 나를 걱정하는데, 아이들 얼굴을 보니 눈물이 더 나와서 그날 수업은 참 힘이 들었다.

대체 무엇이 아직 20살도 채 안 된 이 소녀를 살고 싶지 않게 했을까. 혼자 죽음을 맞이한 그 시간이 무섭지 않았을까. 혼자 가는 길은 또 얼마나 무서울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로 살아주면 안되었을까. 얘야... 너희 엄마, 아빠는 이제 어떡하라고...


”아빠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데, 엄마는 생각보다 담담하더라...“

오전에 다녀온 장례식장에 저녁에도 다시 한번 다녀왔다며 그곳의 분위기를 전하는 남편에게

담담한 게 아니라 넋이 나가 그런 거라고 했다. 지금 자신과 딸에게 벌어진 일이 대체 뭔지 아직 엄마는 이해가 되지도, 인정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이게 누구의 장례식인가 혼란 속에서 그저 멍하겠지. 상주 옷을 입고 그 자리에 몸만 서 있을 뿐, 엄마의 혼은 이미 빠져나가 아직 구천 어딘가에 있을 딸을 찾아 헤메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엄마이지만 그분의 황망한 슬픔과 고통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나까지 찌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긴 하지만 그 창이 내 살을 찢고,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지는 않는다. 나는 맨 몸으로 창을 맞은 건 아니다. 나는 ’남의 일‘ 이라는 보호복을 입고 방패 뒤에 서 있다.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릴지언정, 나에게 닥칠 ’내 일‘은 아닌 것이다. 내 아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하고, 내 아이가 숙제를 안 했다고, 게임을 많이 한다고, 아침에 늑장을 부린다고, 책을 많이 안 읽는다고 잔소리를 하던 나를 반성하고, 그저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에게 닥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감사하는 마음조차 혹시 모를 불행의 씨앗이 될까 봐 마음껏 감사할 수조차 없다.  어떤 죽음은 어떤 죽음은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과 동시에 나에게는 이런 일이 안 생겨서 천만다행이다 하는 비겁한 위안을 느끼게도 한다.      


아이야.. 그곳에선 부디 평안해지길.

너의 나이처럼 내내 꽃처럼 싱그럽고 아름답길...

그리고 남은 부모님께, 감히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지만, 어린 딸의 죽음이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지는 말아주시길,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아파하지 마시기를,

숨죽여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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