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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ug 26. 2024

어떤 죽음 III

                      사진출처 :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사는 동안, 믿고 의지하던 지인에게 사기를 당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기당한 사람 대부분이 지인으로부터 당한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그럼 살면서, 뇌종양에 걸릴 확률은? 미국 암학회에 따르면 평생 뇌 혹은 척수에 악성 종양이 생길 확률은 1% 미만이라고 하니 통계만 놓고 봤을 때, 지인에게 사기당할 확률보다는 훨씬 낮다.

그러면....나한테 사기 친 지인이 뇌종양에 걸릴 확률은 어떻게 계산을 해야하나...

1프로? 0.1프로? 0.01프로?

아니, 몇프로이건 상관없다.

어차피 나한테 일어나면 100프로의 확률로 발생한 일이 되니까.     

           

귀한 인연이라고 믿었던 그녀와의 관계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녀와 너무 많은 것들이 얽혀버린 후 였다. 그녀와 인간적으로는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고, 나는 그녀를 믿고 때로는 의지하기도 했지만, 엄연히 우리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였다. 좋은 뜻으로 내가 먼저 나서 빌려준 돈이었고, 갚기로 한 날짜에서 이미 2년이 넘어있었지만, 그 일로 인해 그녀와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을 만큼 나는 그녀를 믿고 있었고, 일부러 안 갚는게 아니라. 잠시 상황이 안 좋아서 그런 것뿐이라고, 틀림없이 그녀의 능력을 발휘해서 해결할 거라고 믿었다. 가끔 불안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마치 내 맘을 읽은 듯, 자신은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 절대 잊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꼭 보여주겠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나를 믿고 기다려 달라고, 그동안 열심히 일한 결과, 이제 비로소 숨통이 트이고 사업이 잘되고 있다고, 오히려 나를 다독이고 안심시켰다. 누구보다 바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옆에서 죽 보아왔기에, 그녀가 꼭 재기에 성공해서 나에게 진 빚도 갚고, 오히려 그 이상의 감사 표시를 할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히려 혼자 속으로 의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을 미안해 하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이상하게 머리가 아프다’ 던 그녀에게 편두통, 그거 예사로 생각 말고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한지 몇칠이나 되었을까. 병원에 다녀왔다며, 그녀는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검사 결과 ‘뇌종양’이더라고 했다.

인간이 돈 앞에 간사해진다더니, 나는 다른 듯 고상한 듯, 우아를 떨며 살아왔어도,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 뇌종양 발병 사실을 알리는 그녀를 보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럼 내 돈은? 일해서 갚아야하는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었다. 그 다음 든 생각은 가족이 아닌 제3자에게 생명 보험 증여가 가능한가? 였다. 그녀의 지인 소개로 만난 보험 설계사가 그녀의 사업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생명 보험을 두 개나 들었던 자리에 나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의 생각의 흐름이 그랬다. 그때는.

돈 문제가 얽혀있지 않았다면,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고 위로했을까. 결국 나란 인간도 별 수 없는 속물이구나. 씁쓸한 한편, 그런데 이제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그녀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나에 대한 걱정이 물 밀 듯 밀려왔다.               


몇칠 후, 알고 지내던 부동산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의 발병 소식을 들었다며, 그동안 이자를 내지 않았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으니 ‘연대보증인’인 나에게 연락을 했다고 했다. 내지 않은 이자가 이미 원금을 넘어섰고, 갚아야 할 금액이 원금에 이자까지 더해 이만큼이라며 문자로 알려온 금액 숫자 아래, 내 이름이 서명란에 적힌 종이 한 장이 사진으로 전송되었다.  

그 문자를 받고서도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 이게 뭐냐고 물었고, 그때 여기 서명하지 않았냐는 냉정한 목소리에, 그제서야 알았다. 언젠가 내가 ‘그녀를 도와주는 일’이라며 흔쾌히 했던 그 사인의 의미가, 그 돈을 갚을 책임이 나에게도 있으며, 그 부동산 사장님이 빌려 준 그 돈이 바로 ‘사채’ 라는 것을.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알고 있다. ‘그제서야 알았다’ 는게 얼마나 황당하고 멍청하고, 도무지 말도 안되는 소린지. 근데...그때는 진짜 그랬다.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는 의도로 했던 일들이 이런 엄청난 후폭풍이 되어 내 인생을 송두리째 가라앉게 할 줄은...

흔해 빠진 표현이지만,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세상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어리석은 헛똑똑이... 멍텅구리...정신나간 미친년...


이자 한번 안 갚아 원금이 그 지경으로 불어나도록 나에게는 연락 한번 없던 부동산 사장은 그녀의 발병 소식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나에게 전화를 했고, 그제서야 그녀의 뇌종양의 전개 속도와 함께 날아갈 나의 돈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점점 더 무섭게 많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내 사정을 말하며, 나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연대보증인줄 알았다면, 서명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거의 무릎을 꿇듯이 빌어도 사채업자에게 그 읍소가 먹힐 리가 없었다. 빼도박도 못하는 내 서명이 있는 그 계약서가 있는 한 소송을 해도 이길 확률은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속에서처럼 각목을 든 조폭이 사채업자 좌우에 서있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신체포기각서’ 따위를 쓰는 이미지가 내가 ‘사채’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그런 내가 사채빚을 낸 것도 모자라, 원금을 이미 넘은 이자까지 ‘따블’이 되어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튀어나올 듯 두근거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체 이게 뭐지...’                              

앉은 채로 무시무시한 이자는 불어가고 있었다. 건강했을 때도 이자 한번 못내던 그녀가 병원에 드러누운 상태로, 돈을 갚을리는 만무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미 내 몫으로 둔갑해버린 사채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었다.

째깍째깍 흐르는 초침 소리가 마치 만원짜리 지폐가 장작이 되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울고불고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서 지인이 쓴 돈을 대신 갚아야 하는 기가 막힌 처지를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에게 읍소한 결과, 기적처럼.... 갚아야 할 전체 금액의 ‘극히’ 일부를 할인(할인이라는 표현이 이 경우 맞는지 모르겠지만)받았다. 내가 그녀에게 빌려준 돈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빌려주지도 않았고, 내가 1원 한 푼 써본 적도 없는 돈까지 갚아야 했다. 그걸 갚기 위해 부모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했고, 비록 사채 이자만큼은 아니지만 오른 금리에 만만치 않은 그 대출 이자 또한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나는 주식을 안하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신용으로 산 주식이 휴지조각이 된다는게 뭐 이런 비슷한 건가 싶었다.

빌린 적도 쓴 적도 없는 돈의 이자를 내고 있는 이 상황이 마치 이미 죽은 자식의 고액 과외비를 내는 것 같았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되려나....

결국.. 그녀에게서 받지 못할 돈의 액수보다 훨씬 더 큰 재산이 사라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어이없고 빠르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나쁜 일은 겹쳐온다고 했던가. 손해를 만회한답시고 내린 결정들이 줄줄이 얽히고 설키어 상황이 점점 나빠졌다. 마음이 급하니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럴 때 일수록 복지부동 마음을 가담으며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데, 어리석게도 날린 돈을 다시 메꿔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내린 결정들은 모두 최악이었다. 코너에 몰려 급하게 판 부동산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올랐고, 또 그걸 만회하기 위한 투자는 모두 ‘망’이었다. 코로나 이후 유동성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며 내렸던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하며, 사채빚을 갚기 위해 낸 대출 이자 뿐 아니라, 손실 만회를 위해 새로 받은 대출 이자까지 우리 부부의 월급으로 이미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미 썩은 나무에 곰팡이가 점점 번져 나가듯, 금전적인 위기 상황은 삶을 피폐하게 갉아먹었고, 돈이 될 만한 부동산은 이미 다 매도해버린 후였다. 순풍에 돛단배인 줄만 알았던 인생이 역풍을 맞다 못해 바닥으로 침몰하는 느낌이었다. 결혼 20년차, 아이 낳는 것도 미루고 여행 한번 안가고 동동거리며 모아온 전 재산이 신혼 시절의 원점보다도 못한 마이너스가 되어버렸다. 쌓아올리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는데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더라. 남의 이야긴 줄만 알았다. 세상에 남의 얘기는 없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따귀라도 올려붙이고, 머리채라도 잡아 뜯고 싶은데 발병 직후 급속히 증세가 악화 된 그녀는 멱살은 커녕 면회도 안되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몇몇 지인들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그녀가 벌받은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녀가 나를 피해 비겁하게 도망간 것만 같아서 환자에 대한 연민과 안쓰러움은 일도 없이 분하고 억울하고 괘씸하기만 했다.     


어떤 때는 자다가 분하고 억울해서 벌떡 일어나졌다. 그런 날이면, 간병인 역할을 하는 그녀의 남편에게 문자로 쌍욕을 날렸다. 평생 ‘지랄하네‘ 정도를 최고 수위의 욕으로 알고 살았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입에 담지도 못할 육두문자를 문자에 닥치는 대로 쏟아부었다. 그녀의 전화는 꺼져버린지 몇 달이 되었으니, 그녀의 남편에게라도 그렇게 퍼부어야 했다. 평생을 사업하는 아내 옆에 빌붙어 사는 그녀의 남편은 문자를 읽기만 할 뿐 답도 없었다. 답도 없는 문자에 오히려 더 분통이 터지기 일쑤였지만, 자다 깬 새벽에 가슴속에서 용암처럼 열불이 솟아오를 때는 그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타서 재가 되버릴 것만 같았다.                          

그날도 무음 처리된 화면에 자막을 띄우듯,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문자를 그녀의 남편의 번호로 한바탕 보낸 직후였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신새벽에 방안을 헤집고 다니며 씩씩거리고 있는데, 진동 소리와 함께 문자에 답이 왔다. 사진이었다.

적당히 살집이 있고 짧지만 머리숱이 많았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뼈만 남은 낯선 여자가 민머리를 가리는 두건을 쓰고, 눈을 감은 채 산소 호흡기를 입에 물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다시 볼 용기도 나지 않아 눈을 감은 채 자판을 더듬거려 사진을 삭제해버렸다. 그렇게 또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날이 밝았다.              

                  

그리고...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소용도 없는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죽고 싶었고, 죽으려고 했고, 그러다가 진짜 죽을 뻔하고...성당에 다시 나가고, 기도를 하고, 아이를 붙들고, 마음을 붙들었다....

모든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얼마 전,

늦은 시간 수업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귀가하니, 남편이 곁에 앉아보라고 했다. 내 손을 마주 잡고 다짜고짜 주님의 기도를 시작하는 남편을 따라 같이 기도를 올렸다. 이어지는 남편의 화살 기도.

’하느님, 오늘 ㅇㅇㅇ씨가 하늘로 갔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크나큰 고통을 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 거두어 주시고, 여전히 힘들어하는 제 아내가 다 잊고 다시 기운을 차리도록 도와주세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그만 다 잊으라는 남편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여보는 속도 참 좋네. 그 기도가 그리 나오는 걸 보니.‘   

“쉽게 기도가 나온 거 아니야. 속이 좋은 건 더욱 아니고. 그렇지만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거 이제 진짜 그만하면 좋겠어. 그럴수록 우리만 손해고, 여보 건강만 나빠질 뿐이잖아.”

이 모든 일을 함께 겪으며, 그녀와의 인연을 우리 가정으로 끌어들여온 나를 원망하기는커녕 늘 나를 다독이고 함께 이겨나가자고 용기를 주는 남편에게 말할 수 없이 감사하는 마음이기에, 나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장례식장은 나는 안 갈게. 여보 가려면 혼자 다녀 와.”

씻지도 못한 채, 집안 정리를 하며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000씨 당신, 끝까지 이렇게 비겁하게 영영 도망을 가는군요‘                    

다음 날, 장례식장에 다녀온 남편은 사람들이 꽤 있었노라, 했다. 모두가 죽은 사람을 가여워하며 슬퍼했노라.고도 전했다.

그렇게, 나의 분노의 대상은 실체가 사라졌고, ’죽은 사람만 불쌍하게‘ 되어버렸다.                         


그녀와의 악연이 초래한 그 일로 인해 하느님을 다시 만나 기도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경제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오히려 ’그 일을 겪어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 정도로 삶에 대한 태도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도 선물로 받았다. 그러나...여전히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 한 구절이 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를 용서하시고....‘

주일 미사에서 영성체를 모실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아버지, 저는 아직 용서가 안돼요...너무 미워요...‘        

                 

’어떤 죽음은....‘

여전히 이 문장을 완성할 표현을 찾지 못했다. 처음에는 어떤 죽음 I과 II에 이어서 쓰려고 했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기억을 더듬어 내는 것도 참 힘이 들었고, 그 기억들이 활자가 되어 화면에 떠오르는 것을 보는 것도 그 자체로 고통이었다. 간신히 가라앉힌 흙탕물이 한번 왈칵 흔들림에 도로 뿌옇게 흐려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물속에 간신히 눌러 집어넣은 공이 아차, 놓친 손길 한번에 부욱~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기도 했다. 쓰지 말고 그냥 넘어갈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걸 여기, 기어이, 풀어내야 비로소 나 자신이 조금이나마 그 다음 발걸음을 또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처음 생각한 문장은 ’어떤 죽음은 용서의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한다.‘ 였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 쓸 수는 없었다.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용서가 안되고, 그녀와의 인연의 시작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된 내 지난 몇 년이 미치도록 억울하고 화가 난다. 날아간 돈이, 눈물을 머금고 팔아버린 부동산이 미치고 환장하고 팔팔 뛰게 아깝다. 그녀와의 인연은 결국 이렇게 한 사람이 죽어야 끝이 날 정도로 지독한 악연이었음에 틀림없다.                      


주기도문을 외울 때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이 구절을 떳떳하게 입밖으로 소리 낼 자신이, 아직은 없다. 그녀를 용서하겠다고, 이미 용서했다고 하느님께 말씀을, 아직은 못 드린다.

그렇지만...적어도 지옥불에 가게 해 달라고까지는 차마 못하겠다. 나한테는 악연으로 남았으나, 한 아이에게는 늘 애틋한 엄마였고, 아들 아이 남겨 두고 차마 발길이 안 떨어졌을 그 맘을 생각하면,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맘이 아리다.

’부디, 남은 아이 인생에 은총으로 함께 해주시고,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 보겠다고 애쓴 것도 사실이니, 평생 고단했을 그 인생, 거기서나마 좀 편히 쉬게 해주소서.‘

입 밖으로 소리내진 않고 속으로만 기도한다.

아직은 거기까지다.                


어떤 죽음은... ’용서를 강요한다. 그리고 용서는 남겨진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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