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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ug 11. 2024

죽을 뻔해서 다행이다



‘그 일’ 이 있고 일년 쯤 지났을 무렵,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작가 언니가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새로 드라마 집필을 기획하는데 보조작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침 나는 14년간 나의 직업이었던 영어 강사 일을 육아를 위해 잠시 중단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일’의 여파로 육아는커녕,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내팽개친 채, 종일 울고, 자책하고, 분노하고, 후회하고, 그러다 약을 먹고 까무룩 잠에 빠져들고, 다시 깨어나 울고, 자책하고, 후회하고...를 반복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면 안된다, 정신차려야 한다 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내 맘이 내 맘대로 조절이 안되던 그 때 걸려 온 언니의 전화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내게 한가닥 희망같았다. 보조작가 경험도 없는 데다가, 차분히 앉아 생각하고 글을 쓸 정신 상태도 아니었지만, 나는 일단 하겠다고 했다. 뭐라도 해야 이 끊임없는 부정적인 생각의 뫼비우스 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언니의 작업실이 서울 동쪽 끝의 우리집과 정반대인 서울의 서쪽 끝이라는 것이었다.


송파에서 상암동 사무실까지 가려면 지하철 5호선을 타고 1시간을 꼬박 가서 공항철도로 갈아타고 20분을 더 가야 했다. 지하철에서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편도 1시간 반 가까이 걸리는 출퇴근 거리였다. 더구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아침마다 차로 데려다주고 출근을 해야 했다. 아이 학교에 갔다가 차를 다시 집에 두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건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매일 편도 30km가 넘는 거리를 고속도로 위를 달려 출퇴근해야 한다는 뜻인데, 집과 아이의 학교 정도가 운전 반경이었던 내게는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러나 앞뒤를 잴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언니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보조작가 일을 하기 위한 어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끊임없이 ‘그 일’만을 반추하며 자책하는 내 머릿속을 잠시나마 다른 생각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실낱같지만 내게는 동앗줄같은 절박한 기대였다.     


그렇게 송파에서 상암동까지 자차 출근이 시작되었다.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머릿속의 생각이 전래동화 속 ‘토끼 간’처럼 내 맘대로 꺼냈다 집어넣었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고 숨이 안 쉬어지는 공황장애 증상을 겪었다. 게다가 출근을 해야하니 전처럼 약을 먹을 수도 없었다. 약을 먹으면 수면 내시경을 하듯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서도 종일 몽유병 환자처럼 몽롱한 기분이 들어서 그 상태로 일을 할 수도 없을뿐더러 운전을 하는 것도 무리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일을 하겠다고 수락한 것 자체가 참으로 분별력 없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저, ‘머리를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끊임없이 반복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그 일’에 관한 후회와 자책을 떨쳐버릴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날도 나는 잠을 한숨도 못 잔 상태였다. 눕지도 못하고 앉은 채로 밤을 새우고 난 아침.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올림픽 고속도로에 접어들었을 무렵엔 이미 출근길 러시아워가 한참인 시간이었다. 고속도로차들은 스쿨 존의 제한속도보다도 느린 속도로 기다시피 하고 있었고 운전대를 잡고 앉은 나의 눈꺼풀은 저절로 무거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라디오의 볼륨을 최고로 높이고, 껌을 씹고, 자세를 고쳐잡으며 최대한 잠을 쫓아가며 여의도 쯤 왔을까...정체가 풀리기 시작했고, 가양대교를 지나서부터는 ‘고속도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차들이 쌩쌩 달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엎드려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잠시 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을 때, 뭐가 단단히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가 옆 차선을 침범하여 앞에 가던 차의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조각난 기억의  파편에 나도 모르게 ‘꾸벅’ 하다가 화들짝 놀라 머리를 흔들던 내 모습이 보였다.

‘어떡하지... 기어이 큰일을 냈구나. 내가...’

이상하리만큼 침착해진 기억만은 또렷하다.

‘차라리 잘 됐다.’ 이걸로 끝낼 수도 있겠다. 너무 힘들었는데.. ‘

이런 생각이 잠시 스쳤던 것도 같다. 그러나 곧이어 나는 본능적으로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고, 그로부터도 한참이나 내 차와 앞차는 머리와 꼬리를 맞댄 짐승들처럼 아스팔트 위에서 마찰력에 저항하며 앞으로 끼이익 밀려 나갔다. 드라마 속 사고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듯, 불과 몇 초뿐이었을 그 순간이 내게는 시간이 멈춘 듯 영원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차가 멈췄다. 교통체증이 풀린 후여서 차들이 드문드문 다녔기에, 천만다행으로 연쇄충돌은 없었다. 내 차의 본네트는 반이상 찌그러져 검은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솟아오르고 있었고, 에어백이 터지면서 충돌한 안경이 얼굴에 쓸렸는지 콧잔등이 따끔거렸다. 연기에 가려 시야가 뿌연 와중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뒤에서 들이받힌 차 안에서 운전자와 동승자들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세 명이었다. 하나같이 괴성을 지르며 뒷목을 부여잡고 내게로 ‘걸.어.왔.다’. 순간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세 명 모두 잔뜩 화가 나서 문을 열고 스스로 ‘걸.어.왔.다’.      


연기가 걷히고 보니 세 명 모두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차량이 많지도 않은 고속도로에서 느닷없이 뒤에서 들이받히는 황당한 사고를 당한 세 청년의 분노는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저 그저 고맙고 감사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아주어서... 내가 인명 피해까지 내지 않게 해주어서. 안경에 쓸린 콧잔등이 계속 따끔거린 것 말고 다른 통증은 없는 걸로 봐서 나도 다친데는 없는 것 같았다.

”아!!! 씨발! 이 미친년아!!“

운전석에 앉았던 청년이 나를 잡아 죽일 듯 달려들었다. 겁에 질려 머리를 조아리고 무조건

’잘못했습니다‘,’죄송합니다‘ 하며 싹싹 비는 나를 보고 어이가 없었는지

”돌았어요? 뭐야 아줌마 대체!!!“

운전석 청년이 따져 물었다. 나머지 두 청년들도 나를 쳐다봤다.

”.... 죄송합니다....졸았어요...잠을 통 못자서... 미안합니다.정말 미안해요..."

”웬 미친 여편네가 아침 댓바람부터 길거리에 나와서 멀쩡한 인생들을 조지고 지랄이야!!“

한 대 치기라도 할 듯 달려드는 운전석 청년을 나머지 두 친구가 말렸다. 때린다 해도 맞아도 쌀 판이었다. 새로 뽑은 듯 임시 번호판을 달고 있는 그들의 차는 튼튼하기로 이름난 벤츠였다. 세차도 아까워 애지중지한 듯 반들거리는 까만 벤츠의 옆구리가 밟아버린 음료 캔처럼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명차는 아니지만 작고 단단하기로 이름난 내 차 역시 앞부분이 거의 운전석 창문 바로 앞부분까지 우그러져 있었다.


거듭 머리를 조아리는 동안 렉카차가 오고 보험 차량이 출동했다. 무슨 정신으로 보험사에 전화를 했는지, 남편한테 사고가 나자마자 알리기는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참을 더 욕설 비슷한 고함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것 같고, 마지막 말이

”에이, 재수없어! 미친년” 이었던 것 같다.     

보험사 직원이 몰고 온 차량의 조수석에 앉았다.

“많이 놀라셨죠.” 하며 보험사 직원이 생수병을 건네주었다. 그걸 받아들자 그제서야 몸이 덜덜덜 떨리며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피해자 청년 셋은 함께 회사를 운영하는 동료들이고,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지만 경과를 지켜보고 보험사를 통해서 연락을 줄 것이며, 모든 것은 보험 처리 될 테니 너무 염려말라고, 크게 다친 사람이 없어 천만다행이라고 나를 진정시켰다. 내가 낸 보험료에 다 포함되어 있는 서비스긴 하겠지만 겁에 질려있는 나를 안심시켜주기 위한 그 직원의 다정한 멘트가 눈물나게 고마웠다.

사무실까지 모셔다드리고 싶지만 오전 일정이 또 있어 가봐야한다고 미안해하면서 직원은 나는 지하철 역 입구에 내려주고 사라졌다.      


사무실에 올라가기 전, 건물 1층 약국에 들러 따끔거리는 콧잔등에 후시딘을 바르고 안경점에서 구부러진 안경테도 바로 잡았다. 어제 새벽까지 작업했는지 작가 언니는 아직 출근 전이었고 사무실에는 이어폰을 끼고 자판을 또각거리는 어린 보조작가 뿐이었다.

“언니 좀 늦었네요? 어제 늦게까지 일했어요?”

그녀는 무심하게 아는 척을 하고 다시 이어폰을 꽂고 작업에 몰두했다.     

 

사무실은 고요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켜기 전 가만히 어두운 화면을 응시했다. 시계를 보니 11시 10분 이었다.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준 게 8시 30분이었는데 불과 두시간 여 정도의 일이 먼 옛날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모니터에 내 모습이 비춰졌다. 교정을 하긴 했는데 영 부러지기 직전인지 여전히 안경이 비뚜름하게 걸쳐져 있고 머리를 묶고 나온 것 같은데 머리끈이 어디로 갔는지 헝클어진 머리는 산발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오늘 아침 얼마나 큰 일을 겪었는지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나는 오늘 나 포함 네 명을 죽인 살인자가 될 뻔 했다. ’그 일‘ 이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나 혼자가 아닌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죄없는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할 뻔 했다.

교통체증도 없이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벤츠가 처참하게 찌그러지고 미니쿠퍼가 엔진까지 우그러지는 큰 사고였는데도 피해자도 가해자도 어디 하나 부러진 데 없이 무사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 세 청년은 골절은 없었지만 근육이 놀란 증상으로 몇 칠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천만다행‘ 이라는 말로는 그날의 일을 설명할 수 없다. 그때는 성당에 다시 나가기 전이었다. 그냥...하느님이 늘 나를 지켜보시며 보호해주고 계셨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음주운전 못지않게 졸음운전 역시 과실치사를 유발할 수 있는 범죄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절대 운전하기 위험한 컨디션으로는 운전대를 잡지 않고 가까운 동네를 벗어난 먼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때 보조작가로 일한 작품이 성공을 해서 커리어를 쌓아 드라마 작가로 성공을 꿈꾸고 있고, 그래서 ’그 일‘ 로 인한 트라우마도 극복하고, 성공을 하고... 이런 ’드라마같은‘ 해피엔딩은 물론 아니다. 작품은 기획 단계에 그쳤고, 나는 여전히 그 작품이 방송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그 사고로 인해 내 차를 폐차한 후, 나는 아이의 아침 등교를 한동안 남편에게 부탁하고 지하철-공항철도-마을버스를 갈아타며 출퇴근을 몇 번 더 하다가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그 이후로도 공황장애 증상은 계속 되었고, 분노-후회-자책-우울의 사이클은 반복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날 그 사고 이후 ’죽어버리자‘ 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이 되어버렸던 그 찰나의 순간, 아주 잠깐 ’차라리 잘됐다. 힘들어 죽겠는데 죽을 기회네‘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나는 아이와 남편,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또 밟았다.

’살자.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살려주세요!‘

연기를 내며 차가 멈췄고, 폐차를 했지만 나도, 상대방 차의 청년들도 모두 무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죽다 살아난 경험‘을 하니 삶이 감사로 가득했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네.‘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참 많이 쓰는 말이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을 온 몸으로 진짜 경험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각각 느끼는 감사의 깊이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일‘ 때문에 죽고 싶었고, ’그 일‘이 아니었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일을 통해 ’죽을 뻔‘ 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 덕분에 삶의 소중함과 생의 감사함을 오롯이 알게 되었다. 사기당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깨달음이다.      


비로소,  

생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의 감사함을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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