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아 Aug 04. 2024

프롤로그

               조지 프레레덱 와츠 1886년 作 / 캔버스에 유화 / 142 x 112cm / 데이트 갤러리, 런던  

                            [출처] 눈먼 소녀가 들려주는 '희망'의 노래. |작성자 smleedw




상처를 크게 입고 피가 솟구칠때는 상처의 크기도 깊이도 안보인다. 심지어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왈칵왈칵 솟구치는 피를  일단 멈추게 하려고 미친듯이 거즈를 찾아 상처 부위를 꽈악 눌러보지만 마르지 않는 우물물이 솟아나듯 피는 이미 새빨갛게 축축해진 거즈 위로 인정사정없이 흘러넘친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닥친 일에 황망하고 두려워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이 상처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에게 상처를 입한 사람이 누구인지, 대체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그런 것들을 간신히 생각해내느라 머릿속은 엉켜버리고 여전히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핏줄기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내 마지막 기억 속 아이의 일기장에는 분명 '2학년 4반'이라고 쓰여있었는데, 식탁 위에는 '6학년 1반' 이라고 쓰여진 아이의 일기장이 놓여있다. 바이엘을 치던 아이의 모습이 기억나는데 어느새 아이는 소나티네를 연습하고 있다.


 치과, 산부인과,소아과가 전부였던 나의 병원 이력에 '신경정신과'가 추가되었고, 화제, 대일밴드, 해열제, 타이레놀 정도였던 약상자안에는 내 이름과 남편의 이름이 각각 쓰여진 신경정신과 알약 봉지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얼핏 보기에도 내 이름이 쓰인 봉지 안의 알약들의 갯수가 훨씬 많아보였다.  대한민국 원 홈페이지의 데이터 베이스 안에 내 이름이 '원고' 와 ''피항소인' 이라는 외국어보다도 생소한 외계어같은 단어로 분류되어 있었다

 

바뀐 것도 추가된 것도 있었지만 , 사라진 것도 있었다.

  

깊은 잉크빛 블루컬러가 맘에 쏙 들어서 아무리 좋은 차를 줘도 폐차할때까지 타려했던 내 작은 자동차가 사라졌고, 곤충잡는것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들로 산으로 캠핑을 다니는데 안성맞춤이었던 남편의 SUV가 사라졌다. 자주 가던 단골 카페와 수제비가 맛있던 단골 식당이 있던 자리엔 각각 점포정리 안내문이 붙은 탕후루 가게와 마라탕집이 들어섰다. 그리고 충치가 생긴 것도 아닌데 치아 4개가 사라졌다. 스트레스로 잇몸이 내려앉은 탓이라고 했다. 사라진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달동네 재개발 딱지로 시작한 신혼 때부터 한번도 '내 집'이 없었던 적은 없었지만, 한번도 '내 집'에 살았던 적은 없었다. 좋은 '내 집'은 세주고 허름한 '남의 집'에 월세살며. 세입자님 자제분은 '초품아'에서 집앞에 학교로 안전하게  걸어 다닐때, 내  아이는 아침마다 멀리 있는 유치원으로 초등 학교로 실어날랐다. 내 아이는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유치원에 맡겨놓고 남의 아이 가르치며 그렇게 20년간 동동거리며 알토란같이 일궈온 아파트 3채의 등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올해로 결혼 20년 주년. 자산은 신혼초와 비교해서 원점은 커녕 오히려 마이너스 였고, 나의 자존감도 바닥을 친 것도 모자라 아래로 아래로 꺼져갔다.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도,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을 갔던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이사도 했고 심지어 2번인가 이직도 했던 것 같다. 수업을 했고, 회의에 참석하고, 아, 참.. 새로 태어난 조카의 돌잔치에도  갔었고, 시댁 쪽 누군가의 결혼식과 큰고모의 장례식장에도 갔다. 그러고 보니.


그러나 지난 4년간 나는 일상을 산 게 아니었다. 하루하루 내 발로 뚜벅뚜벅 걸었다기 보다는 그저 일상이라는 톱니바퀴에 끼인 듯 맞물려 허척거리며 밀려 밀려 온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어떻게 설명이 되겠는가. 한꺼번에 몇십장이 부욱 찢겨져나간 책처럼 이토록 맥락없이  이어지는 '그  이전'과 '그 이후'가. 13살이 된 아이가 옹알이를 하고, 첫걸음마를 하던 아가 시절은 어제처럼 선명하게 기억하면서, 불과 2,3년전의 아이와의 일상은 아무런 기억이 없고, 거울속에 선 내 모습이 처음 보는 낯선 여자처럼 보이는 이 생경함을....


푹푹 솟아오르던 피가 멈추고 시간이 흘러 피딱지도 떨어진 자리에 남은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흉칙했다. 새살이 돋아나 아물기엔 너무 깊게 패여버린 상처 자욱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상처가 꼭 바닥이 안보이는 깊은 우물같이 느껴졌다. 그 상처 깊숙이 빨려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릴까.. 아니 죽어버릴 것 같았다.


내가 눈뜨고 기억을 잃어버린 사이 훌쩍 커버린 아이는 그새 철이 들었다. 가끔 내가 멍해있으면 엄마 괜찮아? 나를 걱정하고 위로한다. 온 사방에 물폭탄이 터진 듯 부엌이 엉망이 되고 ,그릇에 음식물은 채 닦이지 않아 차라리 안 도와주느니만 못했던 남편의 설겆이 실력이 일취월장 했고, 끔 뜬금없이 '여보, 사랑하오'라고 한다. 내가 몸만 여기 있고 혼이 나간 채로 허우적거리는 동안 두 남자는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죽으면 안되겠다.

살자.


가만히 있으면 자꾸만 그 상처를 들여다보며, 끊임없이 후회하고 그 사람을 원망하고 증오하고,자책하는 나 자신을 바꿔야했다. 생각을 안하려 해도 나는 어느새 지난 시간의 어느 장소로 돌아가 있다. 그때 그 사람을 안만났으면,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그때 그 결정을 하지 않았으면, 그때 그곳에 안갔으면, 그때 그 전화를 안받았으면, 그때...그때...그때...... 머리를 뽑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 생각이 내 마음대로 안되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이 모든 일들이 내게 일어난 데에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세상에 어떤 일도 이유없이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이 일을 통해 분명히 나는 배울 것이 있을 거고, 이 일이 일어나서 오히려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살기 위해서 찾아내야만 했다. 자기 위안이든, 자기 최면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 속으로 뛰어들어 죽어버릴 것 같았다. '전화위복', '새옹지마','비극반태','구한감우'... 사자성어가 아니라 나를 살리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있었다. 사기당해 다행이다. 싶은 것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개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시나브로 상처가 치유되고 있었다. 물론 '그 일이 없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 알고 있다. 여전히 상실감에 구멍이 뻥 뚫려버린 맘을 어쩌지를 못하겠고, 어떤 이에 대한 증오심이 고름처럼 가득차 용서가 안되고, 날아간 수십억이 팔팔 뛰고 데굴데굴 구르도록 아깝고, 밤에 잠이 오질 않아 뜬 눈으로 방안을 서성이다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 '다행'들을 생각하며 그 '다행' 들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들을 기대해본다.


이 글은 기어이, 간신히. 찾아낸 그 '다행'들에 대한 기록이다. 상처가 더 빨리 아물어 새살이 돋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이 브런치도 그 '다행'중 하나인 듯. 그 일이 없었다면 브런치를 해볼 생각도 안했을테니까. 글쓰기가 신경정신과의 분홍, 연두색 알약보다 더 잘 듣는 약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이제 하나씩 적어볼까.

'사기당해 다행이다' 싶은 나의 '감사'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