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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 han a Sep 16. 2024

이를 악물고 칭찬,쌍욕을 참으며 감사

# 글을 시작하기전에

저 여자는 언제까지 멍청하게 지인한테 사기당해 쫄딱 망한 얘기를 자랑이랍시고 반복 재생할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더한 고통을 겪은 분들의 치유의 글쓰기를 보며, 제 경험이, 제 글이 자기 연민에 겨운 나약한 유리멘탈의 찡찡거림인 것 같아서 참...부끄럽기도 합니다. 불편하신 분들께는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읽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그러나, 이렇게라도 다 털어내고 비워내야 비로소 다음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자명할 고통이  무섭고 두려워 감히 들여다 볼 엄두조차 못냈던 그 일을, 그 시간을, 이렇게 들여다보며 글로 정리하고, 그 와중에 더 나은 표현은 없나, 이 글이 읽을만은 할까,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제가 꽤 많이 치유되고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처절한 자아성찰이라 너그러이 양해해주실 글벗님들께서는 이 글을 이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바닥에 자빠져있더라.’

지난 몇 년간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 문장이다. 인생 순풍에 돛단배인줄 알고 까불다가 호되게 역풍을 맞았다. 역풍을 맞다 못해 두동간 난 배가 아예 바닥으로 가라앉아버렸다.


가장 믿었던 지인이 의심스러워질 무렵, 이미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있었고, 나는 사람도 잃고, 결혼 생활 20년간 알토란같이 일궈온 재산도 다 날리고, 건강도 잃고, 자신감도 자존감도 다 잃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팔팔 뛰고, 바닥을 박박 기며 울부짖었고, 분노를 다스릴 길이 없어 농약먹은 쌈닭처럼 가족에게 나 스스로에게 수시로 시비를 걸고 기어이 화를 냈다.


솔직히 사람 잃은 것 보다, 돈 잃은 게 훨씬 더 아깝고 속에서 천불이 났다. 결혼 20년차, 신혼 때부터 한번도 내 집이 없었던 적은 없었지만 한번도 내 집에 살아본 적도 없었다. 살 집(live)과 살 집(buy)을 철저히 구분했다. 살기 좋은 동네에 내 명의의 새집은 전세주고, 허름한 동네에 빌라, 오피스텔 전,월세를 전전하며 모은 재산이었다.

이사를 숱하게 다니며 이삿짐은  아예 처음부터 반만 풀어 다음번 이사를 용이하게 하는 요령도 생겼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가 아니라, ’세입자님 세입자님, 새 집 줄게, 재산 불려주세요‘ 노래를 부른 세월이었다. 세입자님의 자제분들이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에서 아침마다 베란다 너머 손 흔드는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여유있게 등교할 때, 유치원 셔틀 버스도 안 들어오는 아파트에서 아침마다 원으로 아이를 실어나르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라이드를 하고 이제 아이 학교 근처에 자리 잡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종잣돈을 모으기도 했고, 눈치껏 시장의 흐름을 잘 탄 운도 따라주었다. 신혼 때 소위 '딱지'라 부르던  서울 달동네 재개발 주권을 시작으로 좀 더 나은 상급지로 상급지로 사다리를 기어오르듯 옮겨간 결과, 결혼 15년만에 나름 강남 아파트 3채에 서울 한복판의 재개발 빌라까지 옹골차게 자산을 불려나갔다.  그러는동안 내내 낡은 집, 허름한 동네에 월세 살아도 아무 상관 없었다. 나는 강남에 아파트가 3채인 여자니까. 재산세, 종부세를 걱정할지언정, 치솟는 서울 집값은 나를 두렵게 하지 않았다. 두렵기는커녕, 노아의 방주에 성공적으로 올라탄 노아의 아내라도 된 양, 나는 느긋하고  평온했다. 이제 요리조리 엉킨 세금 문제를 잘 풀어나가며 잘 지키기만 하면 노후 준비까지 걱정 없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10년이 넘게 주말도 없이 수업하며 이어가던 학원 강사일도 그만두고, 이제 좀 쉬며 아이 육아에 전념하자 했다.      


세상에 부자들은 많고 많지만, 이만하면 내 기준에 나는 ’부~우자‘였고, 남편 월급이랑 내 학원 강사 월급만 모아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곱씹을수록 스스로가 장하고 기특해서 나 혼자 있을 때도 벙실벙실 웃음이 지어지고,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잘했다. 잘했어. 달동네 재개발 딱지로 시작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애썼다. 이만하면 잘했어. 나 칭찬해.“     


벌렁거리던 신체 부위가 콧구멍에서 명치 끝 가슴으로 바뀌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남에 아파트 3채‘ 스스로 붙인 자랑스런 레테르는 딱 3년을 위태롭게 붙어있다가 하릴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좋은 인연이라 생각했던 지인과의 관계는 악연으로 치달았고, ’선의‘라는  명분을 붙인 나의 ’오지랖‘으로 인해 나는 어느새 그 사람의 사업에 깊숙이 얽혀 들어가, 나도 모르는 새 그녀가 쓴 사채빚의 연대 보증인까지 되어있었다.


머리채라도 잡아 내 돈 물어내라고 악을 쓰고 싶었지만, 불과 얼마전 머리가 아파 종합검진을 받으러 간다던 그녀는 어느새 뇌종양 4기 환자가 되어 면회도 안되는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기가 막혔다.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지... 한때는 가장 믿던 지인이었던 그녀가 죽을 병이라는데... 사람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녀의 병세가 짙어질수록 받을 길이 요원해지고 말 내 돈이 아까워서 미치고 팔팔 뛸 일이었다. 차라리 빨리 죽어서 보험금이라도 타면 내가 채무자로 수령이 가능할까. 인간이 바닥을 치면 본성이 드러난다더니, 나는 그렇게 나의 추악한 최악의 바닥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며, 그 와중에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녀를 저주하고, 나를 자책하고 원망했다.       


야무지게 쌓아 올렸다고 생각한 재산의 한 귀퉁이가 하릴없이 허물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깨진 독에서 금빛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걸 손놓고 쳐다만 보는 독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그나마 남은 재산을 담보로 일을 키운게 더 큰 손해를 불러왔다. 제 정신으로 살 수가 없어서 약 기운에 의지하던 중이었으니, 맨 정신에도 하기 힘든 큰 결정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건  너무 당연했다. 지나고 보니 처음부터 안되는 게임이었는데, 까져나간 재산을 메꿔야한다는 사실에만 눈이 벌개져 있던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던 곳에서 금전적으로 자꾸만 문제가 불거져나왔고, 이제는 뭘 어떻게 얼마나 막아야할지 조차 모르게 모든게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독 깨진 구멍 막아보겠다고 독안에 들어갔다가 익사한 꼴이 된 격이었다.     


그렇게 4년여가 흘렀다. 식탁 위에 놓인 아이의 일기장 앞면에 ’2학년 4반 장00‘가 ’6학년 1반‘으로 바뀌어 있었고, 바이엘 상권을 연습하던 아이는 어느새 체르니 100번을 지나 소나티네를 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고, 치료를 위해 약을 먹고, 죽겠다고 약을 먹었다. 살도 빠지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이도 손톱도 빠지고, 혼도 쏙 빠지고. 그렇게 헤맹이처럼 박박 기는 동안 내 허리춤께 오던 아이는 어느새 내 눈높이까지 자라있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수치심이었다. 나름 똘똘하고  세상의 흐름에 잘 편승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헛똑똑이에 멍청한 년이었다. 어쩌다가 사람 잘못 만나, 재산 다 날려먹고, 그 지경이 되도록 막지를 못했니.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아서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고, 부모님께도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죄인이 된 것 같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혼자 방안에 있어도 귓가에 끊임없이 환청이 들렸다.

”다 너 때문이야. 니가 멍청해서야. 니가 자초한 일이야.다 니가 망친거야.“

머리를 뽑아버릴 수만 있으면 그랬을 것이다. 생각은 끊임없이 그 때, 그 시간, 그 자리를 맴돌며, 그때 거기 안갔다면, 그 때 그 사람을 안 만났다면, 그때 그런 선택과 결정을 안 했더라면... 수도 없는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와 끝도 없는 ’이럴 걸, 저럴 걸‘이 무수한 바늘이 되어 머릿속을 찔러대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시로 심장이 튀어나올 듯 가슴이 벌렁거리고,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유튜브에서 명상, 심리, 자기계발관련 영상을 닥치는 대로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을 읽어도 보려 했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책읽기도 그 지경이 되고보니 한 줄도 눈에 글자가 들어오질 않았다. 책보다는 그나마 화면을 보는 편이 딴 생각으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알고리즘을 타고 넘어 도착한 브에는 인생 역경을 기회로 삼아 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 고난을 겪으며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컨텐츠가 수없이 많았다. 예전 같으면 ’좋은 소리네, 맞는 말이지‘ 하고 말았을 이야기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고 보니, 반드시 내게도 일어났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반드시 그것들은 진리이자 진실이자 참이어야만 했다. 내게 벌어진 이 기막힌 일을 해결해 줄 답이 그 안에 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밤새 눈이 시뻘개지도록 자꾸자꾸 보다보니 ,이런 컨텐츠에도 계보가 있고 각각 일관성있게 얘기하는 큰 줄기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간절히 바라고 심상화하여 되뇌면 우주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준다는 시크릿 계열,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는 나폴레온 힐 계열, 인간관계론과 자기관리론의 고전인 데일 카네기 계열, 행복과 성공의 열쇠는 모두 사람이 쥐고 있다며 누구나 1%의 행복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이코 히토리 계열, 사십에 읽는 쇼펜하우어, 오십에 읽는 논어 등등.. 뭐라도 해답을 건져볼까 싶어 밤새 눈이 벌개지도록 영상을 시청하던 몸부림은 점차 영상에서 다루는 책을 읽는 것으로 확장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예전처럼 활자도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동안 뜸했던 독서를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여러 가지 계열의 자기 계발서가 있었지만, 그 모든 책들이 비슷하게 같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 중에 몇가지를 간절한 맘으로 따라하기도 해봤다. 원하는 것을 문장으로 만들어 하루에 천번 말하기, 100일동안 100번 쓰기, 시각화, 심상화 하여 머릿속에 장면을 떠올리기,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과거형으로 말하기 등등. 예전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웃고 말았을터였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하루를 버틸 수가 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하느님을 다시 만나 오랫동안 냉담하던 성당에 나가고 도도  시작했다. 마음이 불안하고 머릿속에 또 후회와 더불어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가슴이 벌렁거리면 주문을 외우듯 주기도문을 중얼거렸다. 그때의 나를 누군가 봤다면, 아마 나를 끊임없이 혼자말을 하는 정신나간 여자로 여겼을 것이다. 스님이 염불을 외듯, 나는 하루종일 주기도문을, 성모송을, 사도신경을 시시때때로 암송하고, '나는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을 것이다'  미래형이  아니라,'나는 모든 것을 되찾았다' 라고 과거형 문장으로 만들어 읊조렸다.

이렇게 해서 진짜 모든 것이 없던 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중얼거리다가 목에서 피고름이 나와 벙어리가 되더라도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이 앞에 있을 때는 그걸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은 24시간 ’그 생각‘으로 가득해서 잠시라도 중얼거림을 멈추면 또 맘이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수업을 할 때나 다른 사람이 앞에 있을 때 미친 사람처럼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남에게 들키지 않고 나의 불안증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던 중, 모든 책과 영상에서 삶에서의 역경 과 성공 비법으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타인에게 친절하기’와 ‘감사하기’에 생각이 미쳤다.


그 두가지는 타인이 앞에 있어도 그들을 상대로 하면 되는 거니까 나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일상을 살면서도 가능할 것 같았다. 실은 나는 타인에 대한 분노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이런 맘으로 칭찬과 감사가 가당키나 할까....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뭐라도 하지 않으면 시시때때로 머릿속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당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내 앞에 누구에게라도 친절한 멘트를 하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쌍욕이 나오는 것을 꾹 참고 감사를 표시해보자고 작정을 했다. 가식적이어도 작위적이어도 좋았다, 진심따윈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어차피 안 죽을라고 삼키는 비상약 같은 거였으니까.

     

일단, 수업을 하며 매일  만나는 아이들에게 시작했다. 글씨를 잘썼다고, 숙제를 빠짐없이 잘 했다고, 단어를 너무 잘 외웠다고 칭찬을 했다. 칭찬할게 도저히 없는 말썽꾸러기한테는 하다못해 지난 시간보다 안 떠들었다고 오늘은 참 잘 참았다고 칭찬했고, 숙제를 안했다고 하는 녀석에게는 야단을 치는 대신에 야단맞을거 알면서도 솔직히 말해주어서 용감하다고 고맙다고 칭찬했다. 아이는 겸연쩍으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동료 선생님들게는  오늘 입은 오렌지색 블라우스가 너무 잘 어울려 얼굴을 화사하게 한다고 칭찬했고, 차장 관리소장님께는 더운데 수고많으시다고 감사인사를 했다.

운동하러 간 곳에만나는 이웃님들에겐 어쩌면 이렇게 처녀도 울고 가게 탄탄하게 몸이 이뿌시냐고 먼저 말을 건넸고,

사우나실을 청소하는 여사님께는 주말에도 출근하셔서 수고많으시다고 인사를 건넸다. 숙제를 하듯, 하루에 적어도 5번 이상 칭찬과 감사할 거리를 찾아 입밖으로 표현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칭찬에 더 인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편과 아이를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서툰 솜씨로 설거지를 하느라 오히려 부엌을 더 난장판으로 만든 남편에게 예전처럼 잔소리를 하지 않고, 퇴근하고 여보도 피곤할 텐데 나를 도와준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다 했고,

약속한 숙제를 설렁설렁해놓은 아이에게도 욱하려는 맘을 꾹 참고, 졸리고 피곤했을텐데, 잊지 않고 엄마가 내준 숙제를 어떻든 하려고 노력해주어서 기특하고 감사하다 했다. 힘든 하루 끝에 너의 존재 자체가 엄마에게 큰 힘이 되어주니 그 또한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고 표현했다. 이건 순도 100프로의 진심이기도 했다.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반찬통을 엎었는데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으니 감사하고, 끼어드는 차에 화들짝 놀라 핸들을 꺾었는데 사고가 나지 않음에 감사하고, 남편이 넘어졌는데 어디하나 부러지지 않고 조금 히기만 했음에 감사했다.

저녁이면 무사히 세 가족이 하루를 마치고 귀가해서 한자리에 모일수 있음에 감사하고, 심지어 이렇게 칭찬과 감사할 거리를 찾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음에도 감사했다.


처음엔  너무 힘이 들어서,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도록, 억지로 칭찬거리를 찾았고,분노하는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스스로 좀 가식적이다 싶을만큼 감사를 표현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상대의 표정이 환해지고, 그걸 보는 나도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 억지로 쥐어짜듯 칭찬을 짜내던 말썽꾸러기 아이도, 달라진 수업 태도를 칭찬하자,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수업에 집중했고, 괴발세발 엉망이던 글씨체도 조금이지만 나아졌다.동료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는 기분 좋은 평을 해주었고, 남편의 설거지는 점점 뒷마무리까지 깔끔해졌으며, 아이는 내가 귀가가 늦어 신경을 못쓰는데도 매일 할일을 스스로 잘 마무리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칭찬을 하고, 쌍욕을 참으며 감사합니다 를 외치다보니, 서서히 진짜 모든 이들에게 칭찬받아 마땅한 좋은 점들이 보이고. 하루하루 일상이 얼마나 감사와 축복할 일로 가득한지 진심으로 느껴졌다.      

 

,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겪은 나의 기억이 갑자기 장밋빛으로 리셋되고, 그 고통의 시간이 나를 담금질하여 더 성장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어 마침내 더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할렐루야!!......

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적어도 아파트 3채‘를 나의 정체성으로 삼고, 안주하던 어리석은 내가 아니다.  

내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으며,

긴 방황후에도 품어주시는 든든한 하느님 빽도 생겼다.

무엇보다, 마침내 '글 쓸 자격'이 생겼고,

오롯이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러니...

 사기당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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