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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엄마선생님 Nov 20. 2024

한여름날 냄새의 추억

 여름날, 지루한 장마철에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 곁을 스쳐가면 누구나 한 번 맡아보았을 그 냄새.

 축축하고 눅눅한 옷에서 풍겨오는 그 향기.

 걸레쉰내.

 

 20평 정도 되는 공간에 빼곡히 앉아 있는 28명 정도의 학생들. 그 사이 그 걸레 쉰내가 폴폴 풍겨오는 곳에서 45분간 서 있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네, 저는 지금 그 경험을 거의 매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 몸에서도 그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냄새는 괜찮습니다.(사실  괜찮습니다만..) 그럴 수 있지요. 장마철이고, 옷이 잘 안 말랐지만 일단 학교에 교복을 입고 등교는 해야 하니까요. 안 그러면 무시무시한 벌점이 기다리고 있는데, 학생들이라고 도리가 있습니까? 일단은 냄새가 나든 말든 학교는 가야죠. 그러니 힘들지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와중에 에어컨이 고장이라면? 그래서 그 쉰내에 땀냄새가 더해진다면? 거기에 덜 마른 우산에서까지 잘 발효된 간장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면? 청소한답시고 대충 빨아서 널어놓은 걸까지 합세하여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면? 그 방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후각은 둔해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고들 합니다. 그 공간에 계속 있으면 분명 그 냄새를 나는 못 맡아야 하는데, 왜 제 코에는 끊임없이 그 냄새가 풍기는 걸까요?


 창문을 활짝 활짝 열어 환기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냄새는 사그라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반에서는 방향제를 선풍기에 뿌려놓았더군요. 아, 정말 최악의 해결책이었습니다. 지독한 냄새에 섞여오는 달콤한 꽃향기가 그렇게나 역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뿐입니다.


 학부모님들께 학생들 옷을 좀 세탁하고, 학생들이 땀을 흘리고 나면 샤워를 꼭 할 수 있도록 지도해 달라는 얘기까지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 지독하던 냄새도 여름의 끝자락이 지나갈 무렵부터는 서서히 옅어지더니, 완연한 가을의 중턱에서는 미미한 흔적만을 남기고 있습니다. 역시 모든 건 시간이 약입니다. 미미한 흔적은 점심 먹고 축구 한 판 뛰고 들어오는 학생들은 아직 땀을 흘리기 때문이겠지요. 이건 겨울이 되어도 자신의 존재를 끝까지 알리기 위해 살아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교실에서 숨은 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4계절을 함께하는 저와 학생들은 이렇게 냄새까지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 냄새가 익숙해지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제가 교단을 떠나는 그날, 이 냄새마저도 그리워지는 날이 오게 될까요? 

냄새보다는, 그 순 아이들과 나눈 대화와 웃음이 더 그리워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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