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툰엄마선생님 Nov 03. 2024

금쪽같은 내 학생들

청소 좀 하고 갈래?

 "다 들어와!!!"


  천둥같이 소리를 질렀다. 가을을 맞이하는 새파란 하늘보다 더 서슬 퍼런 분노를 담은 사자후. 영문을 모를 표정으로 다른 반, 다른 학년 아이들까지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글을 읽는 누군가 내 모습을 봤다면 정말 미친X을 떠올렸을지도.

  내려다본 창문 밖에는 아이들이 소복이 모여 공놀이 중이다. 기분과는 달리 운동장 풍경은 가을옷을 갈아입어 알록달록, 그야말로  폭의 그림이다. 삼삼오오,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 아이들까지. 평화롭기 그지없다.


  눈을 감고 한숨을 크게 한 번 쉬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진정하자, 진정.

  '나는 온도계가 아니다. 온도 조절다.'

  열받는다고 있는 대로 수은주가 올라가면 온도계는 폭발할 뿐. 활활 타라 재만 남을 순 없지. 감았던 눈을 뜨고,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런데, 느릿느릿 걸어오는 폼이 가관이다.

  온도 조절, 오늘못할 거 같다.




  우리 반은 점심시간에 청소를 한다. 1학년이기 때문에 제일 늦게 급식실로 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 7교시까지 늘어지는 긴긴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도 같이 축 늘어져 마치 녹은 치즈 같 안쓰럽기도 해서. 공부에 지쳐있는 이 불쌍한 어린양들을 얼른 집에 보내야 나도 급한 업무들을 처리하고 칼퇴를 할 수 있도 하다.


  갓 초등학교에서 올라 초딩티 벗지 못한 새내기 중딩들일 때는 가 특별히 뭘 어쩌지 않아도 청소지도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였다. "3반 애들은 손이 야무진가 봐. 교실이 깨끗하네!"라는 교과 선생님들 칭찬도 들었다.


  여름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호르몬 탓인가. 키가 쑥 큰 만큼 잔머리도 굵어졌다. 나름 저들을 배려한다고 청소 구역을 세세하게 나눠서 많지 않은 청소 양일텐데도 슬쩍슬쩍 요령을 피우기 시작했다. 점심시간까지도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담임이 청소 검사를 하러 교실에 들르는 일이 뜨문뜨문해진 걸 간파한 것이다. 여우 같은 것들 보소!


  결국 일이 터졌다. 점심시간 학습지도 학생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 교실에 들렀다.

  세상에. 창문은 꼭꼭 닫힌 채, 빗자루 쥔 사람 1명, 대걸레 1명. 달랑 2명만이 교실을 쓸고, 닦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영민아, 애들 다 어디 갔니?"

  당황한 손가락이 창문을 향한다.

  운동장? 지금 운동장을 가리킨 건가? 못다 한 과제를 하는 것도, 화장실에 가느라 늦는 것도 아니고, 운동장이라고? 배신감이 두 배로 치솟았다. 내 너희를 믿었거늘. 거리가 꽤 있는데도, 나의 분노에 찬 음성이 운동장으로 울려 퍼졌다.


  분명 몇 분 걸리지 않았겠지만, 나의 체감상 억겁이 걸린 듯 거북이걸음으로 교실로 올라온 아이들에게 잔소리 폭격기를 가동했다. 이 교실이 누가 쓰는 교실인지, 이 먼지를 누가 다 들이마시고 있는지. 내 입에서 불도 함께 뿜어져 나왔으리라. 아이들 귀에 피는 안 났나 몰라. 오후 수업 이후까지 가라앉지 않은 나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낀 아이들 종례시간에도 전에 없이 조용히 달사항을 었더랬다.


  내가 소리를 지르는 일은 정말 드물다. 단, 잔소리가 좀 많은 건 인정. 이렇게 한 번씩 나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사건이 발생하면 무서운 호랑이가 되어버린다.


  '어휴, 소리는 왜 질러대서는... 그냥 잘 타이를걸.'

  아이들을 혼내고 밤에 홀로 반성하는 엄마들처럼, 학생들을 혼내고 나면 내 자식을 혼낸 듯이 마음 한편이 찝찝하고, 후회로 가득 찬다.  당시엔 화가 나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더없이 자괴감이 밀려 때도 있다.

   

  후회 섞인 힘없는 한숨을 내뱉고 텅 빈 교실을 둘러보았다. 제멋대로 널린 걸레며, 1년이 다 가도록 종이와 플라스틱을 뒤섞어 버린 분리수거함이 대환장 파티를 이루고 있다. 들 말로는 청소했다는 교실이 이렇다. 그저 조용히 어지러운 교실을 정리했다. 다시 스멀스멀 용암처럼 기어올라오려는 화를 지그시 눌야 했지만.

  

  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그래, 오늘의 잔소리를 내일로 미루자. 내일은 좀 다르겠지. 

  청소 좀 못하고, 안 하면 어때. 우리 집은 깨끗한가 뭐. "노는 게 제일 좋아!"를 외칠 나이인걸. 그 마음만은 이해해야지.

  

  분명, 내일 또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화도 냈다가, 웃었다가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래도 조금은 더 다정한 선생님이 되어주겠다, 마음속으로 되뇌며 아이들 눈에는 미처 띄지 않은 먼지들을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부었다. 먼지와 함께 나의 몹쓸 분노도.


  금쪽같은 내 학생들, 아니 내 새끼들.

  그래도 우리 금쪽이들아,


 청소 좀 하고 갈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