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만두가게? 5시간의 대장정
이번 명절엔 어떤 음식을 해줄까?
사실 나 만두가 먹고 싶어. 해줄 수 있어?
당신이 만들면 되지 뭘. 자! 시작하자
남편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직접 하면 금방 만들 수 있다며 회유해 주일 오후 갑작스레 만두 빚기가 시작됐다.
김치냉장고에 묵은 김장 김치가 넉넉하니 시작만 하면 된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긴 해도, 직접 빚은 손만두만큼 맛있는 걸 찾기 어렵기에 흔쾌히 동의했다.
1. 돼지고기 다짐육은 간을 해서 볶아둔다.(볶지 않고 넣는 게 더 맛있지만, 소를 먹기도 하고 찌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미리 볶는다)
2. 당면은 끓는 물에 삶아서 잘게 자른다.
3. 파, 양파, 부추 등 좋아하는 야채들을 잘게 다진다.
이번엔 특별히 양배추도 추가해 다져 넣었다.
4. 김치는 넉넉하게 잘게 썰어 준비한다.
5. 두부와 김치의 물기를 면포에 넣고 확실하게 짠다.
여기서부터 남편의 힘을 쓸 차례다. "잘한다. 팔뚝도 멋있네" 적극 칭찬해 줬더니 더욱 신이 나서 물기를 꽉 짜준다.
모든 재료들을 잘 섞고, 소금, 후추, 간장을 넣고 간을 맞춘다. 한입 떠먹으니 고기가 익은 상태라 그냥 먹어도 맛있다. 약간의 간간함이 있어야 만두피와 어우러져 딱 맛난 간이 된다.
만두피까지 만들기엔 부담스러워 시중에 파는 만두피를 준비했다. 거실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TV도 보면서 함께 만들었다.
예전에는 아이들도 덤벼들어 함께 만들었지만, 김치만두를 안 먹는 아이들은 이젠 크더니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덕분에 부부만의 만두 빚는 시간을 누렸다.
서울식 손만두는 동그랗게 만드는 것에 비해 강원도식 손만두는 반을 접어 꼭지 3개를 잡아주는 게 포인트다. 옛날 어른들께 '만두 잘 빚어 예쁜 딸 낳겠다' 소리를 들을 만큼 자신 있던 나는 빠른 손으로 척척 만들어내고, 남편은 두툼한 손으로 투박하지만 예쁘게 빚어내려고 애쓴다.
쟁반 하나씩 채워질 때쯤 허리가 아프다며 일어서는 남편을 붙잡아 찜통에 만두 찌는 역할을 시켰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고분고분 찜통에 면포를 깔고, 귀하신 만두를 하나씩 올렸다. 나는 만두를 빚고 남편은 만두를 찌면서 자연스레 둘 사이엔 분업이 이루어졌다.
갓 쪄진 만두를 한입 입에 넣어보니 역시 이 맛이다.
어릴 적, 새해마다 온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던 생각이 난다. 가족 모두가 만두를 좋아해 자주 사 먹기도 하고, 냉동 만두도 많이 먹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집에서 만든 김치만두의 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 아버지, 어머니, 외할머니, 이모들, 조카들까지 모두 '만두 마니아'들이라 새해 1월, 2월엔 만두가게에서 일하듯 엄청난 양의 만두를 만든다. 그리하여 매년 만두 빚기는 새해 우리 집안의 연례행사였다. 찌고 끓이고 튀겨먹으며 연초를 만두와 함께 보냈었다. 이번에도 친정에선 몇 차례나 걸쳐서 이모들끼리 모여 만두를 해 먹는다고 하길래, 너무나 먹으러 가고 싶었었다.
시댁에서도 만두를 즐긴다. 신혼 초, 어머님께서 틈날 때마다 손 만두를 만들어 쪄 보내주셨었다. 편히 받아만 먹을 땐 몰랐던 그 정성이 이제야 연세가 많아 못해주시니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제는 내가 만들어드릴 차례다.
만두는 갓 쪄서 먹어야 제일 맛있기에 서둘러 한판을 쪄 시댁에 보냈다. "오랜만에 손만두를 먹으니 너무 좋다. 며느리가 만들어주니 더욱 고맙다."는 말씀을 들으니 뿌듯했다.
설날에 먹을 만두까지 만들다 보니 양이 제법 많아 만두 빚기는 5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만두피가 조금 남았길래 "소를 조금 더 만들어 다 만들어버릴까?" 했더니... 남편은 슬그머니 도망가 버렸다. 이토록 힘들게 만들어 먹었다는 걸 이제야 좀 깨달았으려나.
명절 음식이지만, 우리 가족 모두의 소울푸드인 만두.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으니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멀리 계신 친정엄마께도 만두 만들어 먹었다는 소식을 사진으로 전해드렸더니, "딸이 만든 만두가 더 맛나 보인다"라고 칭찬이 돌아왔다.
넉넉히 쪄서 보관해 둔 만두를 보니, 설날아침 가족들과 함께 떡국에 넣어 모두 나눠 먹을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