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함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삶의 무게가 주는 피로에서, 관계의 갈등에서, 내면의 혼란에서, 세월이 새겨놓은 흔적에서 불쑥 올라온다. 때론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공허가,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을 파고든다.
이 심란함은 한 가지 얼굴만 가진 것이 아니다. 어떤 날은 나를 깊이 끌어내려 더 아래로 가라앉히고, 어떤 날은 숨 막히듯 답답해 빨리 벗어나고 싶게 만든다. 왜 이렇게 극과 극의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걸까. 아마도 내 안의 상반된 욕구들이 부딪히기 때문일 것이다. 더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면 본질을 마주할 수 있으리란 희망과,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운 본능이 동시에 꿈틀거리는 것.
나는 때때로 그 모순을 가만히 지켜본다. 한쪽에서는 “더 깊이 들어가라, 끝까지 마주하라” 속삭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빨리 벗어나라, 네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외친다. 그 갈림길에서 심장은 빨라지고, 머릿속은 소란스러워진다.
그러나 결국 심란함은 잠시 머무는 손님일 뿐이다. 잠들기 전 고요 속에 들려오는 속삭임처럼, 비가 오기 전 바람의 떨림처럼. 나는 그 손님에게 차를 내주듯, 잠시 함께 머물러 보려고 한다. 때로는 글을 쓰며, 때로는 호흡을 고르며, 때로는 걷는 발걸음 속에서.
심란한 마음은 결코 나를 부수려 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신호, “아직 너의 내면은 뜨겁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심란함을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나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전히 내가 꿈꾸고,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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