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주머니 속의 송곳이 되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빛나는 존재, 굳이 나서지 않아도 알아봐 주는 사람
그런 이들을 우리는 낭중지추라 부른다
주머니 속에 송곳을 넣어두어도 언젠가는 그 끝이 삐져나오듯
진짜 실력과 내공은 감출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송곳보다는 빈 주머니를 두드리며 소리를 내는 쪽에 더 가깝다
더 크게 보이려 애쓰고, 더 대단해 보이려 말수를 늘리고, 작은 성취에도 과한 포장을 붙인다
고사에 따르면 그런 이들을 가리켜 허장성세라 한다
속은 텅 비었는데 겉으로만 기세를 부풀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허장성세를 비난의 언어로만 사용한다
속이 비었다, 허세다
하지만 그 허세의 이면에는 두려움과 결핍, 그리고 버티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보여줄 게 없으니, 보여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내는 몸부림이다
어쩌면 그들도 주머니 속에 송곳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아직 날이 들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허장성세를 비웃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꾸짖음이 아니라
괜찮다, 아직 갈고닦는 중이잖아
하는 연민과 위로, 그리고 응원의 시선이다
누구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허세를 부리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반대로 낭중지추는 타고난 천재의 다른 말이 아니다
그들의 송곳은 세월의 마찰로, 수많은 부딪힘과 연마 끝에 스스로를 날카롭게 만든 결과다
묵묵히 시간을 견디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다듬은 자의 결과물이다
그날은 우연히 빛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내의 조각이 쌓여 만들어진 빛이다
허장성세는 아직 다듬히지 않은 송곳이고
낭중지추는 세월을 이겨낸 송곳이다
결국 둘은 같은 주머니 속에서 만난다
하나는 아직 길을 걷는 중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길의 끝에 서 있을 뿐이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의 허세가 보이거든
조용히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려 보자
그도 언젠가 주머니 속에서 빛날 사람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이렇게 다짐하자
나는 내 송곳을 감추지 않되, 함부로 꺼내 흔들지 않겠다
조용히, 꾸준히, 하루하루를 갈고닦으며
언젠가 세월이 나를 대신해 증명해 줄 날을 기다리겠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말하지 않아도 빛나는 사람,
낭중지추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꼭 낭중지추가 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이 또한 선택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과 자기애가 바탕이 된 삶이라면
무엇으로 살아가든, 어떤 길로 나아가든
그 자체로 이미 빛의 방향일 것이라
필자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