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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끄적

철부지를 다시 읽는 시간

by 이제이

철부지의 시대 — 때를 모른다는 것의 새로운 가치

우리는 오래도록 누군가를 ‘철부지’라고 불러왔다.

철이 들지 않은 사람, 상황을 읽지 못하는 사람, 때를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

어른들이 아이에게 바르게 서야 한다고 꾸짖을 때 가장 흔히 쓰던 단어였고, 사회에서도 미숙함의 표지처럼 여겨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오늘의 세계를 바라보면, 그 ‘철부지’라는 말이 어쩐지 다른 색을 띠며 다가온다.

어쩌면 철부지라는 말은 시대 변화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단어가 아닐까?



1. 때를 안다는 것은 무엇이었나


과거 사회에서 ‘때를 안다’는 것은 곧 규범을 알고 흐름을 읽는 능력을 뜻했다.

가만히 있을 때, 나설 때, 감추어야 할 때, 드러내야 할 때.

순응은 미덕이었고, 질서는 안정이었다.

이런 기준 속에서 ‘철부지’는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였다.

조용해야 할 때 소리를 내고, 멈춰야 할 때 움직이며, 남들이 걷는 길과 다른 방향을 택하는 사람.

사람들은 그를 미숙하다고 여겼고,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보다 흐름을 새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주목받는다.

정답을 외우는 사람보다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창의적이라 말한다.

때를 아는 능력보다 때를 모른 채 스스로의 리듬을 만드는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2. 때를 모른다는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낸다’는 뜻


요즘 같은 세상에서 누군가가 ‘때를 모른다’고 말할 때, 그것은 더 이상 미숙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쩌면 기발함, 신기함, 고집스러운 자기만의 길을 뜻할지도 모른다.


남들이 “지금은 아닐 거야”라고 말할 때 시작해 버리는 사람,

모두가 손을 놓을 때 끝까지 붙잡고 있는 사람,

흐름이 아닌 감각으로 움직이는 사람—


이들은 과거에는 ‘철부지’로 불렸겠지만

오늘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 된다.


때를 모른다는 것은

‘상황을 읽지 못하고 헛발질한다’가 아니라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표를 따른다’는 말일지 모른다.



3. 평강공주의 선택이 보여준 패러다임


평강공주는 모두가 말렸던 온달을 택했다.

왕족의 시선으로 온달은 바보였고, 철부지였으며,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평강공주는 그 가능성을 당시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그는 시대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역사에 남을 전환점이 되었다.


만약 평강공주가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규범을 따랐을 것이고, 온달은 평생 세상모르는 바보로 남았을 것이다.

온달이 장군이 된 것은 그가 철부지였기 때문도, 그녀가 철부지였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둘 모두가 정해진 때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때란 외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순간이 곧 때가 되는 것이다.



4. 현대의 ‘철부지’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판단 속에서 누군가를 너무 쉽게 정의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단어의 그림자도 달라진다.


옛날의 철부지는

세상 이치를 모르는 사람을 뜻했지만,

오늘의 철부지는

기성의 리듬을 따르지 않는 사람,

오히려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다.


세상은 변했고, 흐름의 속도는 더 빠르게 갈라진다.

그 속에서 ‘때를 아는 사람’은 효율적일 수 있지만

‘때를 모르는 사람’은 새로운 길을 연다.


창의성은 질서 바깥에서 피어난다.

새로운 발상은 때에 맞지 않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발견은 길을 잃어보는 순간에 나온다.


그러니 지금 이 시대의 철부지는

누구보다 앞서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5. 새로운 패러다임: 철부지의 반전 가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철부지는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래를 먼저 걷는 사람이라고.


그들은 무리의 속도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로 움직인다.

정답을 따라가는 대신

자신만의 질문을 찾아간다.

지금이 맞는 때인지 확인하지 않고

해보고 싶은 것을 먼저 시도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때를 몰라서’라는 말은

더 이상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찬사에 가깝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대의 개척자들은 언제나

누군가의 눈에 철부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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