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끄적

인정받지 않을 결심

by 이제이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나에 대한 평가 그리고 내가 타인을 평가하며 매기는 보이지 않는 점수들 속에서 어느새 그런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중학교 1학년이 되면 시작되는 평가에 의한 줄 세우기는 수능이라는 거대한 관문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수능 우수자를 존경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회 속에 살게 되었다

이 세태는 평가를 기준으로 줄을 세우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어야만 비로소 삶다운 삶을 사는 것 같다는 믿음을 우리 안에 은근히 심어 놓는다

반복적인 평가와 줄 세우기가 우리 사회와 개인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이미 단단히 뿌리내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정이라는 것이 오직 타인으로부터 받아내야 하는 것이라면 그 욕망에는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을 갈구하는 일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채울수록 더 갈증 나고 끝내 허무함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태어나 부모로부터의 인정에서 출발해 학교 사회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는 인정에 대한 갈구는 자기 발전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어 스스로를 조금씩 태워 없애는 행위와 닮아 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진정한 인정은 타인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면 안 되는 걸까

이런 사례가 있다 관심도 무관심도 아닌 적당한 방임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성인이 된 후 적당히 자신을 방임하는 사람과 결혼할 확률이 높다는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그 이유는 그 환경이 트라우마이면서도 동시에 너무 오래 지속되었기에 그 상태 자체가 익숙한 편안함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익숙한 것을 안정이라 착각하며 그 방향으로 끌리기도 한다



단편적인 예이지만 이 안에는 여러 심리 반응이 겹쳐 있다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 않았던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타인의 평가에 덜 흔들리거나 혹은 비슷한 결의 사람에게 이유 없는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환경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이 아니라 인정이 삶의 필수 조건이 아니어도 인간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인정받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평가에서 밀려나면 실패한 삶을 사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너무 오래 길들여진 감각일지도 모른다

인정받지 않을 결심이란 세상과 단절하겠다는 선언도 타인을 무시하겠다는 오만도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증명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며 끊임없이 점수를 매기고 비교하던 나 자신에게서 한 발 물러서는 용기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대신 나 자신으로부터의 인정을 선택하는 일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를 배신하지는 않았는지 내 감정과 욕망을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그 질문 앞에서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



인정받지 않을 결심은 비교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존재 그 자체로 나를 승인하는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