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라는 가면과 선량한 이기주의

by 이제이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이상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모두 타인에게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내가 가진 안락함과 이익은 단 한 뼘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본능적인 이기심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 모순이 부딪힐 때 생기는 균열들을 들여다봅니다.

1. 찰나의 도덕성과 숨겨진 피로
지하철 문이 열리고 운 좋게 내 앞에 빈자리가 생깁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한 종아리가 비명을 지르는 통에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다음 역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내 앞에 섭니다.

내 안의 좋은 사람이 속삭입니다. 일어나야지, 배운 사람이잖아. 하지만 지친 나는 눈을 감아버립니다. 나도 돈 내고 타는 승객이고 지금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합니다. 결국 나는 잠든 척 고개를 떨굽니다. 나는 나쁜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저 무거운 하루를 버틴 평범한 인간일까요.

2. 축하 뒤에 숨은 비참한 진심
절친한 친구가 고대하던 대기업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옵니다. 내 입은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와 정말 축하해! 역시 너라면 해낼 줄 알았어! 하지만 전화를 끊은 뒤 방 안의 정적 속에서 찾아오는 건 묘한 패배감입니다.

친구의 성공이 기쁜 마음도 진심이지만, 그만큼 내 처지가 초라해 보이는 비참함도 진심입니다. 우정이라는 이름의 관대함과 나의 결핍을 방어하려는 시기심이 한 방에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3. 직장과 사회라는 무대 위의 연기
분리수거장에서 남이 버린 비닐을 대신 떼어내며 정의로운 시민의 우월감을 만끽하다가도, 정작 내 방에 들어오면 귀찮음에 배달 용기를 대충 헹궈 던져 놓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배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며 멋진 선배 역할을 자처하다가도, 막상 후배가 나를 건너뛰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서늘한 공포를 느낍니다. 진심으로 후배의 성장을 응원하면서도, 내 자리를 위협받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이중적인 마음이 공존합니다.

4. 사랑이라는 이름의 교묘한 거래
연애와 부부 관계는 이 이중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나는 연인에게 쿨한 사람이고 싶어 자유를 허락하는 척하지만, 연락이 조금만 끊겨도 상대의 시간을 내 통제 아래 두고 싶어 안달합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주말 아침 희생을 자처하며 집안일을 돕지만, 내 머릿속엔 보이지 않는 장부가 펼쳐져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배려했으니 나중에 내 편을 들어달라는 무언의 압박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주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나중에 청구할 보이지 않는 빚을 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5. 육아라는 둥지 속의 모순
아이가 스스로 신발을 신는 모습을 보며 독립적인 성장을 응원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내 조언보다 친구의 말을 더 신뢰하는 모습을 보면 묘한 상실감을 느낍니다.

아이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과, 영원히 내 품 안에서 머물러주길 바라는 욕심. 나는 아이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으면서도, 내 둥지를 떠나지 못하게 깃털을 하나씩 뽑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작가의 말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이중성에 괴로워하며 자책합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적어도 우리가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나의 이기심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의 이중성도 넉넉히 품어줄 수 있는 진짜 선함이 시작됩니다. 조금 이상하면 어떤가요. 그 모순마저도 인간다운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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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D, 기업교육 강사이자 아마추어 성악도이며, 1인 기업 CEO로 활동중인 프리랜서이고, 엄마 입니다. 삶과 여성, 자기계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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