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가 만든 정신적 고통
한때 우리는 사람의 정신적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곤 했다.
‘마음이 약해서 그래’, ‘의지가 부족해서’, ‘그냥 예민한 성격이라 그래’ 같은 말들은 고통받는 이들의 상처 위에 덧입혀지는 2차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한 번쯤은 우울의 터널을 지나거나, 불안이라는 벽 앞에 서게 되는 시대다.
상담실을 찾는 사람의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고, 일상의 피로가 만성적인 무기력으로 굳어지며, 어느 날 갑자기 ‘왜인지 모르지만 너무 무겁다’는 말을 꺼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울, 나르시시즘, 경계성 인격장애는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더 나아가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처럼 반사회적 인격장애까지도 뉴스나 콘텐츠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개별적 사례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 전반에 걸쳐 정신적, 심리적 불안정성이 확산되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는 왜 이렇게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씩 짚어가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구조, 바로 **‘성과 중심의 경쟁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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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삶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냈는가’로 평가받는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무엇을 성취했는지, 어떤 타이틀을 가졌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다.
학생은 성적과 스펙으로, 직장인은 실적과 성과로, 부모는 자녀의 성취로 평가받는다.
‘잘하고 있어’가 아니라, ‘남들보다 잘하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는 구조.
이런 구조는 개인의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외부 기준에 의존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사랑하기 어렵게 만든다.
경쟁은 기본적으로 ‘상대’가 있어야 성립된다.
그리고 이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비교의 대상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모두가 멋진 삶을 사는 듯 보이고, 나만 초라하게 느껴지는 현상이 심화된다.
이는 자존감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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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다르면 불안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동질성과 비교 우위를 중시하는 문화가 강하다.
입시, 취업, 승진, 결혼, 자녀 양육까지 모든 인생 단계가 평가와 비교의 연속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다르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다름을 인정받는 것보다는 ‘정해진 틀 안에서 더 잘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런 문화에서는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현해 나가는 자율성이 크게 제한된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보다, 사회가 기대하는 삶을 모방하거나 강요된 목표를 따라가게 된다.
그 결과, 외형적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공허감이나 자기 상실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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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피로가 만들어낸 병리적 증상들
정신과나 심리상담 현장에서는 ‘번아웃’ ‘무기력’ ‘공황’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돌아오는 건 자괴감과 허무감이다.
열심히 해도 ‘충분히’ 잘하지 못했다는 느낌,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지만 멈추면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
이런 심리적 압박이 누적될 경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뿐만 아니라 경계성 인격장애, 자아 분열, 나르시시즘적 방어 기제 등 다양한 심리적 병리로 연결될 수 있다.
나르시시즘이 과잉된 사회는 타인의 인정 없이는 자존감을 유지할 수 없고, 그 인정을 끊임없이 구걸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무관심과 냉소로 무장한 사람들도 많아진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고립을 강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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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멈추지 않고, 정신은 계속 병들어간다
더 큰 문제는 이 경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은퇴 후에도, 나이 들어서도 비교와 성과의 그림자는 따라붙는다.
‘노후 준비를 얼마나 잘했는가’, ‘자식이 얼마나 성공했는가’, ‘어떤 집에 사는가’ 같은 질문이 여전히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삶 전체가 ‘비교와 경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펼쳐진다.
이 구조 속에서는 누구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심지어 ‘나는 경쟁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시선과 기준에 맞춰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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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고통은 개인의 약함이 아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겪는 정신적 고통은 결코 개인의 약함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가 만든 결과이며, 그 구조 안에서 버티려 애쓴 사람들의 내면이 무너져내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렇게 아픈가?”**에서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만들었는가?”**로.
경쟁 사회가 만든 이 고통의 정체를 마주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정신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