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파티에서 나누는 삶의 감각
어릴 적 우리 집은 부유하지 않았다.
작은 방 하나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자고,
겨울이면 연탄불에 손을 녹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이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오히려 미소가 먼저 나온다.
당시에는 불편하고 조심스러웠지만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배운 가장 귀한 것은 ‘사람’이었다는 걸.
물질은 부족했지만, 마음만은 자주 넘쳤다.
배고픈 속에서도 서로의 젓가락을 살피던 배려,
살얼음 낀 겨울 아침에도 아버지가 덮어주던 이불 끝자락.
그 모든 것이, ‘가난’이 아니었더라면
내 안에 깊이 새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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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루소는 『에밀』에서 말했다.
“사람은 불행을 겪으며 성장하고, 결핍을 통해 인간다움을 배운다.”
그 말처럼, 결핍은 단순히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충만함을 일깨우는 통로다.
가난이 우리에게 준 것은 ‘가치의 재정의’였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긍정심리학에서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아닌, 관계와 의미, 감사의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어떤 연구에서는 연봉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면
삶의 만족도는 거의 증가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오히려, 가진 것이 적을 때 우리는 더 자주 웃고,
더 깊이 연결되며, 더 강하게 회복된다.
이따금 생각한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여유와 선택의 배경에는
그 시절의 가난이 깔려 있음을.
그 가난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고,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키워주었다.
무언가를 가졌을 때만이 아니라
잃고 견뎠을 때 성장하는 인간의 역설.
그것이야말로 ‘인문학의 자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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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난을 낭만화하자는 뜻은 아니다.
생계를 위협하고 존엄을 흔드는 절대적 빈곤은 분명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가난의 가치’는
그 고단한 경험 속에서만 길러질 수 있는 감정의 깊이와 사람에 대한 이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디지털과 속도의 시대에 잃어버린 인간성의 회복일지 모른다.
문득, 아우렐리우스의 말이 떠오른다.
“삶이란,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깨어 있는 감정으로 완성된다.”
가난은 그 감정을 일깨운다.
무언가를 꼭 붙잡기 전,
비워진 손안에 남은 체온처럼.
그러니, 가난도 재산이다.
그건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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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의 한마디
결핍은 종종,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든다.
그 시절의 가난이 당신에게 남긴 향기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