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 정돈

by 이제이

가끔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순간이 필요하다.
텅 빈 집 안, 멈춘 시계, 창밖으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그 무음 속에서야 나는 내 안의 소음을 들을 수 있다.



삶은 생각보다 시끄럽다.
눈 뜨자마자 울리는 알람 소리, 스마트폰 알림, 사람들 사이의 대화, 배경처럼 깔린 음악, 마음속으로 떠다니는 해야 할 일들.
그 모든 것이 쉼 없이 나를 흔든다. 때로는 그런 흔들림이 삶의 생동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나를 흐트러뜨리는 잡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무음의 시간'을 만든다.
핸드폰을 끄고, 불을 낮추고, 책도 펴지 않은 채 그대로 소파에 앉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멍하니 있노라면 처음엔 불안하다.
‘이 시간이 아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손은 자꾸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려 든다.
하지만 그 불안을 지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잔잔해진다.



무음의 시간은 내 안의 것들을 '정돈'하게 해 준다.
지나간 말 중 후회되는 말을 떠올리고,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에 가 닿기도 한다.
언제나 우선순위에 밀려 뒤로 밀려났던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삶의 먼지를 한 번 털어내고 나면, 그 속에 숨겨진 진심과 마주할 수 있다.



정돈이란 버리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어디에 두는지가 핵심이다.
소중한 기억은 가까운 곳에, 상처는 햇빛이 드는 쪽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은 가슴 한복판에, 잠시 미뤄둬도 괜찮은 일은 조금 더 먼 곳에.



나는 무음 속에서 비로소 ‘나’를 다시 정리한다.
무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가장 진실한 말들이 떠오른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마음을 덮고 치유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침묵은 낭비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무음 속에서야 비로소 내 삶은 중심을 되찾고,
정돈된 마음 위에 새로운 하루가 조용히 내려앉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요즘, ‘무음의 정돈’을 하루의 의식처럼 지켜내려 한다.
잠시라도 소음을 꺼내고, 생각의 소리를 내려놓고, 나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
그 짧은 고요 속에서 들리는 내면의 숨결은
다정하고 단정하다.
내가 누구였는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다시 품어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러준다.



그렇게 나는 어제의 나를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단순한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한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마음속에 하나의 빈 의자만 있다면
그곳에 조용히 나를 앉힐 수 있다면,
삶은 늘 다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