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이 길을 좀 잘못 들어도

바다가 버티고 있으면 아무 문제없어요

by 이제이

인생은 늘 불투명함의 연속이다.
나는 때때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떤 길은 선명해 보이고, 어떤 길은 불안하다.
가끔은 선택이 틀렸음을 뒤늦게 깨닫고,
그 선택으로 인해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단순히 ‘실수’나 ‘낭비’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 길에서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마음이 조금이라도 성장했다면
그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반대로, 그럴듯한 길을 걸었지만
내 안의 의식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삶에 변화도, 깨달음도,
작은 희망조차 피어나지 않았다면

그게 진짜 시간을 좀먹는 길 아닐까.



나는 믿는다.
운명도, 숙명도, 운도
결국은 내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예전에 한 지인이 내게 사주를 봐준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말했다.
“당신은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팔자예요.
허리춤에 돈주머니를 달고 태어나서
비워질 즈음이면 다시 채워지는 그런 삶.”
그리고 덧붙였다.
“공부운은 좀 약해요.
머리는 명석한데,
가방끈이 짧아 뜻을 이루기엔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물질에 만족하며 살아가세요.”



그 말을 꽤 오래 믿으며 살았다.
놀랍게도 정말 그런 삶이 펼쳐졌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고,
그 넉넉함은 나눔으로 이어졌고,
마음의 여유는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날, 마음 한 켠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고개를 들었다.
막연한 동경도 아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 마음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전했고,
성과도 있었다.
비록 아주 긴 학벌의 끈은 아니었지만
남들이 자신 있게 이력서를 내는 곳에
나도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그 무렵부터였을까.
경제적인 여유가 예전만 못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게… 행복 총량의 법칙일까?”



하지만 곧 마음을 달리 먹었다.

누가 정했는가.
행복의 총량이란 걸.
풍요의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총량을 늘리자고.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고.

행복도, 풍요도
결국은 내가 그것을 얼마나 믿는지,
얼마나 행동하는지,
얼마나 버티는지에 달려 있는 거라고.

그 믿음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나는 지금,
물질의 풍요도 다시 찾아가는 중이고,
넘어서야 했던 배움의 끈도 하나 더 챙길 준비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총량을 늘릴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안다.

냇물이 잠시 길을 잘못 들 수도 있다.
돌에 부딪히고, 흙탕물에 휘말리기도 한다.

하지만 바다가 그 자리에 굳건히 버티고 있다면,
결국 그 물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게 되어 있다.

나의 총량은 내가 정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